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클릭경제교육(종간)
국가자산과 경제: 조선의 제왕학 교과서, 『성학집요(聖學輯要)』
강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2015.08.31


1567, 조선의 제14대 국왕 선조(宣祖)가 즉위하였다. 이 즈음 조선의 정치에는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공신들이 대부분 정계에서 물러났고, 이들을 대신해서 젊고 참신한 학자들이 새롭게 관직에 진출하였다. 신진 관리들은 새 국왕을 도와서 정치·사회적 폐단들을 일소하고 조선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기대와 달랐다.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신진 관리들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국왕 선조의 의지와 노력도 부족하였다.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이이의 염원을 담아 

당시 신진 관료의 한 사람이었던 이이는 현실 정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왕 선조를 성군(聖君), 즉 완전하고 훌륭한 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이이는 성군이 되기 위해 반드시 배우고 실천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선조에게 올렸는데, 그 책이 바로 성학집요(聖學輯要)이다.


이이가 성학집요를 완성하여 선조에게 올린 것은 선조가 왕이 된 지 8년째가 되던 1575년이었다. ‘성학집요(聖學輯要)’라는 제목은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의 요점을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성인은 도덕과 학문, 정치적 능력 등을 가장 완전하게 갖춘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이이가 성학집요를 선조에게 올린 데에는 선조가 도덕·학문·능력을 완전하게 갖춘 훌륭한 왕, 즉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이는 성학집요를 선조에게 올리면서 성학집요를 지은 목적을 밝힌 상소도 함께 올렸다. 이 상소에서 이이는 선조가 훌륭한 왕이 될 자질을 갖췄지만, 고쳐야 할 문제점도 있다고 하였다.

 

전하께서는 영특한 기질을 너무 드러내려고 하여 착한 말을 받아드리는 도량이 부족하고 쉽게 화를 내며, 남을 이기려는 마음을 다 없애지 못하셨습니다. (중략) 전하께서는 자질이 순수하고 학문이 높아서 요(() 같은 훌륭한 왕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뜻을 돈독하게 세우지 않으시고, 착한 것을 널리 구하지 않으십니까?”

 

이이는 선조가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과신하여 관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성군이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이가 생각한 문제 해결의 방법은 바로 성학집요를 깊이 공부해서 그 내용을 깨달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성학집요는 성군이 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는 제왕학의 교과서였다.


선조는 성학집요의 글이 매우 간절하고 요긴하며 치도(治道)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간행하도록 지시했다. ,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등 조선 후기 국왕들은 성학집요를 경연(經筵, 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연마하고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 교재의 하나로 채택하여 공부하였다. 이렇게 볼 때, ‘제왕학 교과서라는 성학집요의 목적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군에 이르는 방도(方道),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이는 성학집요를 지을 때 자신의 행실을 닦고(修身)가정을 바르게 한 후에(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온 세상을 태평하게 한다(平天下)”라는 대학(大學)의 핵심 내용을 참고하여 체재를 다섯 편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유학 경전과 여러 학자들의 글에서 각 편의 주제에 맞는 내용들을 뽑아서 기록한 다음, 그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덧붙였다.


1편은 통설(統說), 성학집요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대학중용(中庸)의 구절을 인용하여 국왕이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기본 원칙을 설명하였다.


2편부터 제4편까지는 본론에 해당한다. 2편은 수기(修己), 개인의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는 것에 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소학(小學), 사서(四書), 오경(五經) 등의 유학 경전과 역사서를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3편은 정가(正家), 가정을 바르게 하는 것에 관한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다.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는 기본 원칙은 윤리와 은의(恩義, 은혜와 의리) 두 가지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 다음, 구체적인 내용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친척 어른들을 공경하며 자녀를 가르치는 일, 부부 간에 지켜야 할 도리, 가정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 원칙과 윤리 등을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4편은 위정(爲政)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원칙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이는 임금은 백성의 부모라는 명제를 정치의 근본으로 규정하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임금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어진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고 간사한 소인배들을 구별하여 멀리 하는 방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이는 이이가 관리 임용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또 그는 옛날의 현명한 사람은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라고 하였다시경(詩經)의 말을 인용하면서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잘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지막 제5편은 성현도통(聖賢道統)으로, 성학집요의 결론에 해당한다. 중국 고대로부터 공자, 맹자를 거쳐 송나라의 주희까지 유학(儒學)의 전통이 계승된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이는 선조가 성군이 되어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학집요를 지었다. 여기에는 국왕만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이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성학집요는 기본적으로 국왕을 위한 책이지만, 반드시 국왕에게만 필요했던 책은 아니다. 관리로서 정치를 잘 하는 데에도, 부모와 자식으로서 도리를 실천하는 데에도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효도와 우애, 바른 인재의 등용 등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내용들이다. 성학집요는 조선시대의 국왕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모든 사람에게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