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자본주의 경제로 나아갈 수 있었다거나 독재가 아니었다면 경제발전이 불가능했다는 이야기, 여기에 신자유주의, 좌파나 우파 등 뜬구름 잡는 단어도 자주 들린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구성된 역사문제연구소 ‘20세기 한국사’ 기획팀은 소장이었던 내게 이러한 질문이나 이슈를 주제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제사 집필을 제안했다. 이 책은 20세기 한국 경제의 흐름을 크게 세 가지(구한 말·대한제국, 일제 식민지, 해방 이후)로 나누어, 각 시기에 맞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가지 주제 선정 배경에는 국가 주권의 중대성을 몰각하는 분위기가 고려됐다. 어떤 국가를 만드느냐(민주화)가 문제이지 국가는 공동체의 필수 요소이다. 기업과 개인이 시장에서 만난다고 자본주의일까? 경제 전공 서적에는 경제주체를 개인(가계), 기업, 정부(국가)로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시장을 창출하고 기업의 후견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역사적 실체로서의 자본주의를 분석한 브로델(Fernand Braudel), 아리기(Giovanni Arrighi) 등 저명한 구미 학자들도 자본주의 경제는 국가 권력과의 결합이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 기업을 뒷받침해줄 국가는 없었다. 조선인에게는 국가 없는 자본주의, 즉 ‘식민지 자본주의’였다.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식민지 자본주의는 그만큼 수탈에 효율적이었다. 해방 후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는 주권국가 하에서 특히 금융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분단과 전쟁이 필연이었을까? 많은 편견과는 달리 민족운동 전선의 좌우를 떠나 독립국가 경제구상은 주요 산업 국유화, 토지개혁, 중소 상공업 자유화 등으로 모아졌다. 이는 일제(자본)가 한반도의 자산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현실’ 때문이지 ‘이념’ 때문은 아니었다. 경제계획의 필요성도 좌우,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즉 분단국가 두 헌법의 경제조항은 전쟁을 불사할 만큼 적대적 이념 차이를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남북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두텁게 하는 경제협력을 통해 6·25전쟁 이후 지속되는 이념적인 적대관계를 완화할 수 있다. 사업수완이 남달랐던 정주영 前 현대그룹 회장이 이미 그 길을 개척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관계에 대해 현학적 이론부터 거론할 필요는 없다. 세계 현대사에서 민주화 없이 경제발전이 지속됐던 사례는 없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예외로 들 수 있지만,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경제민주화와 낮은 부패가 역설적으로 정치적 독재를 유지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민주화란 구성원의 능력을 표출할 수 있는 다양성 정도를 뜻한다. 여성문제나 소수자 문제 등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도 점차 각성의 대상이 된다. 즉 민주화의 과제는 끝이 없다. 경제 민주화 역시 기업을 위한 소비시장을 넓혀준다. 특히 중하층의 소득 상승은 바로 소비로 이어진다. 1970년대 초를 경계로 남북의 경제력이 역전되어 격차가 확대된 중요한 요인으로 민주화를 빼놓을 수 없다. 민주화가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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