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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21세기 신(新)실크로드를 둘러싼 ‘빙해냉전’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2015.10.30


북극이 녹고 있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평균 두께 2~3m에 이르는 해빙(Sea Ice)이 사라지면서 햇빛이 해수로 직접 들어와 해빙의 크기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National Snow and Ice Data Center(2013)에 따르면 북극해빙의 크기는 2007년 약 436만㎢에서 2013년 336만㎢로 10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는 기존 기후모델의 예상보다 무려 4배나 빠른 속도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는 속도만큼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바로 북극을 둘러싼 국가들의 영토분쟁이다.


영유권 분쟁에 군사력까지 동원돼
북극은 영토 분쟁에 직접 당사자로 나선 국가의 숫자와 해당 지역의 규모로 놓고 본다면 지구상 가장 치열한 영토분쟁 국가이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남쪽만이 존재하는 얼음 덩어리에 불과한 이곳을 두고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가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과 일본)도, 북방영토(일본과 러시아)도 아닌 얼음으로 둘러싸인 북극을 두고 영토분쟁이 시작된 원인은 다름 아닌 지구 온난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빙이 녹기 시작하면서 북극 항로가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북극의 해빙 속도가 지금과 같다면 2030년경에는 연중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항해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1). 이렇게 만들어진 북극항로는 동아시아와 북대서양을 잇는 최단 해상 경로가 된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가려고 할 때, 기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경우 운송거리는 22,000㎞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는 15,000㎞로 무려 7,000㎞가 단축된다. 운송시간 역시 10일 이상 감소하여 기존 항로보다 경제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적의 위험이 없어 보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북극항로의 장점이다.


한편, 북극지역에 매장된 자원도 북극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 지리학회(USGS)에 따르면 북극해에는 지구상에서 개발되지 않은 원유의 13%, 천연가스의 30%, 액화 천연가스의 20%가 묻혀 있다. 화석연료만으로도 무려 172조 달러에 달하는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이 밖에도 철광석, 구리, 금, 다이아몬드, 아연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광물자원도 약 2조 달러가 매장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극을 둘러싼 영토분쟁은 인접국뿐만 아니라 비연안국까지도 가세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도 2013년 북극권의 주요 쟁점을 논의하는 ‘북극 이사회(The Arctic Council)’의 옵저버 자격을 획득하여 북극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빙과 함께 북극항로가 열리고, 각국의 석유 및 가스의 채굴 기술이 발달하면서 북극은 영유권 분쟁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분쟁을 ‘빙해냉전(Ice-Cold War)’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유권 분쟁은 지난해 러시아가 북극해 연안에 7,00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북극해 인근에서 핵잠수함이 참가한 4만5,000명 병력 규모의 군사훈련을 예고 없이 진행함에 따라 보다 격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북극, 신비의 땅에서 해상 운송로와 자원 확보의 교두보로
각국이 북극항로와 북극 자원 확보를 위해 군사행동까지 불사하는 이면에는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상운송로와 자원의 확보는 자국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북극항로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 기업들이 생산비용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다. 얼마 전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기업이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해운사 팬오션(STX)을 인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육계를 키우기 위한 수입 곡물가격을 살펴보면 곡물의 수입가 가운데 운송비가 무려 40%를 차지한다. 따라서 팬오션을 활용한 곡물유통사업이 원활히 수행될 경우 큰 폭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운송비가 기업들의 생산비용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추가적인 자원의 확보도 기업이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추가적인 자원이 개발된다면 자원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어 종전과 동일한 비용으로 생산에 투입 가능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동일한 비용으로도 더 많은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생산이 활발해지면 경제가 선순환 구조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제라면 생산의 증가로 인해 향상된 기업의 수입은 기업에 일하는 직원들의 소득증가로 이어지고, 소득의 증가는 기업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북극을 둘러싼 경제적 이득이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되기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우려가 석유가격의 하락이다. 환경규제의 강화와 대체에너지의 개발로 인해 석유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북극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자원을 채굴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이미 석유자원의 가격이 낮을 대로 낮아져 추가적인 북극의 석유자원 채굴이 기업의 생산비용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정유사인 로열 더치 셸(Royal Dutch-Shell)이 지난 달 9년 동안 추진해 온 북극해 유전 개발을 약 10조6,000억 원의 손실을 입으면서 중단한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북극을 쟁탈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의 석유 기업 ENI는 계속해서 유전 시추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러시아 정부도 엑손모빌과 함께 탐사를 계속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도 북극항로를 활용한 복합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북극 인접국들과 전략적인 협의를 논의 중이다. 특히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큰 그림 속에서 북극해를 ‘21세기 신실크로드’로 바라보고 있어 우리나라의 물류전략에서 북극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이처럼 계속해서 북극의 문을 두드리는 각국의 노력으로 수천 년 간 은둔과 신비의 땅이었던 순백의 북극이 언제까지 개발의 손길을 피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북극 이사회(Arctic Council)
북극의 환경보존 및 지속가능한 개발을 목적으로 북극 관련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1996년 창설된 정부 간 협의 기구. 회원국은 미국, 러시아, 캐나다 등 8개국이고, 우리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옵저버 자격으로 가입되어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
유라시아 역내 국가 간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유라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를 공식 주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