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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이달의 책: 노동을 보는 눈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2015.10.30

오늘날 우리는 노동이 삶을 거의 압도하는 ‘노동사회’를 몇 가지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일자리 위기다. 세계 자본주의 바다 위의 노동사회라는 배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 있는 상품을 판매해야만 지속가능한 항해가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신기술, 인사조직 혁신 등 다양한 합리화 전략이 일자리를 줄인다. 물론, 일부 새 일자리도 생긴다. 하지만 이는 사라지는 일자리에 비해 턱없이 적은 양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좋은’ 일자리보다 ‘나쁜’ 일자리가 더 많다.


다음으로 일중독 위기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일자리 위기는 대량의 실업자를 유발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의 충성심과 노동 강도를 강화한다. ‘잘리지’ 않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각 개인의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휴식에 대한 갈망은 커짐에도 불구하고 휴식을 취할 시간은 없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쉬는 시간조차 ‘스마트폰 노동’이 계속된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사라지고, 일터와 가정의 경계도 사라진다. 결과는 만성피로, 산재 위험, 일중독, 과로사, 가족 및 인간관계 훼손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일중독이 꼭 취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조차 (정규)일자리를 강박적으로 동경하고 추구한다.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일자리는 거의 마약과도 같다.


원래 우리가 노동을 하는 까닭은 생계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일의 의미라면 우리는 소외감 내지 무기력함을 느낄 것이다. 일의 본질적 의미는 자아실현이다. 일을 통해 자아를 드러내고 발전시키며 세상에 기여할 때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 억지로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동료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상사에게 아부하고 부하 직원을 하대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뒤 우리는 느닷없이 ‘내가 뭘 하며 사나?’라며 후회한다. 이처럼 우리는 일, 그 자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자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한 사회가 올바로 돌아가기 위해 90MⅹH의 노동량이 필요하다면, 현재 9명(M)이 10시간(H)씩 일하는 방식을, 6명으로 줄이고 15시간씩 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15명이 6시간씩 일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6명의 고용 창출도 되고 모두의 삶의 질도 향상된다. 동기부여와 능력개발도 되어 효율도 오른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의 경험이 그 증거다.


일중독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 심리상담보다는 전사회적으로 노동시간 단축해야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갈 수 있다. 또한 교육, 언론, 정치, 경제 등 제 분야에서 사람들이 왜 일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지, 사회적 해결책이 무엇인지, 널리 토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노동의 의미에 관한 토론을 활성화하여 그 개념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제도적으로는 남녀 노동자들이 모두 경영에 참가하여 발언할 기회를 당당히 가져야 하고, 단체교섭도 활성화해야 한다. 또 협동조합식 경영이나 노동자자주관리 경영도 장려해야 한다. 주인의식이 결여된 노동자가 누군가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할 수 없고, 노동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일하는 까닭은, 돈이나 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