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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수요공급의 법칙
이승훈/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0.08.30

사람들을 특정 생업에 배치하여 각각 전문적 생산활동에 종사하도록 하고 최종 생산물을 서로 나누어 쓰는 현대의 경제생활방식을 사회적 분업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개인별 생업과 생산 및 분배의 결정권을 모두 중앙계획당국에 집중시키지만, 시장경제는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을 각 개인에게 일임한다. 개인은 자신의 생업을 선택하고 생산 및 소비 등 자신의 경제활동을 결정할 자유를 누린다. 경제적 자유는 사유 재산권을 허용하면서 개인별 생계유지의 책임도 함께 요구한다. 시장경제의 개인은 스스로 선택한 생업에서 소득을 얻고 이 돈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여 생활하는데, 각자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이기적 경제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편하면서 높은 소득을 얻는 생업과 고급스런 물자를 원할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좋은 생업과 좋은 물자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좋겠지만, 현실경제의 문제는 좋은 생업과 물자는 항상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물량보다 확보된 가용 물량이 더 적은 부족(shortage) 사태가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경쟁(competition) 이 나타난다.
경쟁에는 그 나름의 규칙이 있다. 정글의 경쟁에서는 힘센 자가 이기고, 인기 공연의 표를 구입하려면 남보다 먼저 와야 한다. 시장경쟁의 규칙은 부족한 것을 차지하는 승자는 그 제공자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어떤 생업을 영이와 철이가 서로 하려고 경쟁한다고 하자. 시장이 영이의 제품만 사간다면 시장경쟁의 승자는 영이다. 만들어낸 것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생업은 존재할 수 있으므로 생업을 제공하는 주체는 시장(즉, 사주는 사람들)이고, 이 시장이 생업경쟁의 승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생업경쟁에서 패배한 철이는 다른 생업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족한 상품에 대한 시장경쟁의 승자는 이 상품의 판매자가 결정한다. 상품이 남아돌면 부족한 것은 판매기회다. 부족한 판매기회에 대한 시장경쟁에서는 상품의 수요자가 승자를 결정한다. 상품의 남고 모자람을 시장경쟁이 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그림>은 일반적 상품의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을 함께 그린 것인데, 100원, 70원, 그리고 40원 등 세 가격이 표시되어있다. 가격 100원에서는 공급량이 110인데 수요량이 40이므로 70의 초과공급이 발생하고, 가격 40원에서는 40(=100-60)의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그리고 가격 70원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각각 80으로 서로 일치한다.
사람들이 각자 마음대로 자신의 경제생활을 결정한다면 어떤 상품은 모자랄 것이고 어떤 상품은 남아돌 것이다. 가격이 <그림>의 40원이면 상품이 모자라서 돈이 있어도 못 사고 100원이면 이미 생산한 상품을 팔지 못해 남아도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가격이 계속 그대로 유지되면 모자라고 남는 사태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인데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일이 잦으면 사람들은 시장구입을 포기하고 스스로 만들어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팔려고 만들었는데 못 파는 일이 잦으면 남에게 팔 목적의 생산을 포기할 것이다. 각자 생업에만 종사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방식의 생활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각자 자신의 생업에만 종사하고 필요한 물자는 시장구입에 의존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요즈음 기본 찬과 김치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직장여성들이 늘어나는 현실은 시장의존 현상이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어떤 재화도 남거나 모자라는 사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음을 뜻한다. 사람들이 생산과 소비를 자유롭게 결정하는데도 불구하고 각 상품의 가격은 예컨대 <그림>의 70원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시장경쟁의 독특한 규칙이 <그림>의 100원이나 40원 같은 가격은 배제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40원이라면 해당 재화가 초과수요 40만큼 부족하고, 부족은 경쟁을 부른다. 부족한 것의 공급자가 승자를 선택하는 시장경쟁의 규칙은 호가 경쟁(bidding competition)을 야기한다. 이기적 공급자는 가능하면 더 높은 값을 받고 팔기를 원하므로, 남보다 더 높은 값을 지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팔 것이다. 사고 싶은데 못사는 사람은 더 높은 값을 호가하기 마련이다. 초과수요가 지속되는 한, 더 높은 값을 부르는 호가 경쟁도 지속되므로 그 가격은 결코 유지될 수 없다.
가격 100원에서 초과공급은 70이다. 물건은 남아돌지만 이번에는 판매기회가 부족하므로 호가경쟁은 부족한 판매기회를 대상으로 벌어진다. 수요자는 남보다 더 싸게 파는 공급자의 물건을 우선적으로 구매할 것이므로, 초과공급이 지속되는 한 공급자들은 가격을 낮추는 호가경쟁을 계속한다. 이처럼 시장에서는 초과공급을 불러오는 가격도 그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격이 어느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그것은 <그림>의 70원처럼 수요와 공급이 서로 일치하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이 가격을 균형가격(equilibrium price), 또는 시장청산가격(market clearing price)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장경제의 가격이 균형가격으로 결정되는 현상을 수요공급의 법칙(law of demand and supply) 이라고 한다.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각자 마음대로 소비와 생산을 결정하고 어떠한 중앙의 지시도 받지 않지만 각 품목이 필요한 만큼만 생산되는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수요공급의 법칙은 달리 시장기제(market mechanism), 또는 가격기제(price mechanism)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담 스미스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자비로운 신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of the benevolent God)’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