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농지의 전당(典當)제도에서 발전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세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전세제도는 제도금융의 이용과 단독주택의 부분임대라는 주택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특수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전세는 과거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사(私)금융의 기능을 수행하여, 집주인은 목돈 마련을 위해 집의 일부를 세놓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1950~60년대 거의 모든 주택이 단독주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택의 일부 사랑방이나 문간방 등을 빌려줌으로써 공(公)금융을 이용하지 못했던 서민들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전제 하에 존재하는 전세
집주인, 전세보증금은 집값 상승으로 상쇄
임차인, 월세부담 없이 주거문제 해결
제도권 내 금융의 이용이 쉬워지고, 단독주택보다 아파트가 많아진 지금까지도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택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은 2년 후 돌려줘야 할 빚이지만, 집값이 계속해서 빠르게 올랐기 때문에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해 임대인은 전세를 놓고서라도 미리 주택을 사두는 것이 이익이었으며, 은행에 대출이자를 지불할 필요 없이 큰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부담 없이 저렴하게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전세보증금의 경우 주택구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저축성 개념까지 포함하였다. 정부 또한 비용부담 없이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전세제도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2010년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제도는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전제 하에 존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주택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즉 전세보증금을 이용해서라도 주택을 미리 구입한 것인데,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다.
| 전세 수급 불균형으로 전세가격 상승
집주인, 저금리로 수익 보전을 위해 월세 선호
임차인, 주택구입 유인 감소, 저금리로 전세 선호
이에 반해 전세가격은 전세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큰 폭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레버리지 효과(편집자 주 - 빚을 지렛대로 이용해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임대인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전세가격을 올리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시중은행의 금리보다 월세 수익이 더 높게 형성되어 있고, 전세금을 이용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중소형 주택을 중심으로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저금리로 인해 전세보증금에 대한 운용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집주인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물량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면서 주택을 살 여력이 있는 임차인조차도 구입을 미루고 있다.
저금리 정책에 따라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 점도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 재계약 시점마다 임대인의 요구로 가격을 올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국민은행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낮아지면서 지난해 평균 전세금 인상액의 이자비용이 주거이전에 따른 이사비 등의 고정비용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전세물량 감소와 전세 수요 증가라는 전세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전세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전세제도로 주택 구입시 금리 영향이 적어
새 주택가격의 30~40%를 충당하는 전세보증금
고령화, 가계부채, 저금리는 전세시장 위축 요인
우리나라는 금리의 영향이 비교적 크지 않은 국가이다. 바로 전세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이 주택을 구입할 경우, 기존 전세보증금으로 새 주택가격의 30~40%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대출금의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
여윳돈을 가지고 추가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 역시 전세를 놓고 주택을 구입하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돈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인구구조 변화와 계속되는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주택시장 안정세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저성장·저금리 기조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전세시장은 크게 축소될 것으로 판단된다.
단, 교육, 직장 등의 이유로 임시 거주를 원하는 일부 임차인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일부 임대인들을 위해 전세제도 자체는 소멸되지 않고 명맥만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안지아 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조정실 책임연구원
jia@kre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