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는 팬데믹이 발생하자 세계 각국 정부는 앞다투어 국민들에게 돈을 지급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지급되었고, 이후 2차, 3차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고용취약계층 등에 제공되었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사람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1969년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생각은 약 50년이 지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미션: 위축된 수요를 살려라!
코로나19로 생산과 소비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우리나라 항공사들의 경우, 2020년 4월부터 필수 인력을 제외한 70%의 직원이 휴직에 들어갔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상향으로 집합 제한 업종으로 지정된 카페, 체육시설, 노래연습장, 공연장 등은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위축되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0년 12월 우리나라 실업자 수는 113만 5천 명으로 외환위기가 진행되던 1999년 10월의 110만 8천 명 이후 20년 만에 가장 많았습니다. 생산활동이 위축되는 시기에는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평소보다 근로시간이 줄어 가계 소득이 감소하게 됩니다. 소득이 감소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줄어든 소비는 생산활동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1)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는 직접 돈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득의 감소와 소비 위축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헬리콥터 머니는 가계와 기업에 흘러 들어갔습니다.2) 정부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역 화폐 또는 카드 포인트 형태로 각 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줄어든 소득의 일부를 채워주었습니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여행, 항공, 공연, 조선 분야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소상공인에게는 1.5%의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전기료와 임대료, 4대 보험을 감면 또는 유예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 뿌려진 헬리콥터 머니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생산이 중단되면서 실업률이 치솟자 미국 정부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법(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이하 「CARES Act」)을 통과시키며 신속한 대응에 나섰습니다. 경기부양법은 근로자의 임금 및 고용 유지, 경제 안정화 등에 관한 내용(Division A)과 코로나19 대응 기관 및 응급시스템 개선을 위한 긴급 지출(Division B)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상회하는 총 2조 7,923억 달러 규모3)인 이 법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임금 유지 프로그램, 실업급여, 중소기업 보조금 및 대출, 가계 회복 지원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의 피해를 줄이는 데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위 표는 2020년 3월 27일 「CARES Act」가 최초에 제정될 당시 금액을 기준으로 작성한 것으로, 연방준비제도(Fed)를 통한 정부의 긴급 대출 자금(최대 4,540억 달러)은 제외함.
자료:미국 연방의회예산국(CBO), 「H.R. 748, CARES Act, Public Law 116-136」, 7쪽(2020.3.27.)을 바탕으로 재구성
자료: KOTRA, 「코로나19 주요국의 경제·통상정책 동향」(2020.6.)을 바탕으로 재구성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신흥국에서도 줄어든 소비 수요를 늘리기 위해 헬리콥터 머니를 뿌리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가계와 기업, 즉 민간에 직접 돈이 지급되는 헬리콥터 머니는 어디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된 헬리콥터 머니
헬리콥터 머니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9년 논문 「최적화폐수량(The Optimum Quantity of Money)」에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알려졌습니다. 프리드먼은 1929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대공황이 지속된 것은 금리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치솟고, 가계 소득이 감소하는 시기에는 금리를 낮추어 경제에 돈이 원활하게 돌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국민들에게 돈을 주면, 그 돈으로 제품을 소비하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이런 주장을 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국민에게 나누어 주면 돈의 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급격하게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독일은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후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고 이를 당시 중앙은행인 독일제국은행이 인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일제국은행은 1921년에만 400억 마르크라는 막대한 화폐를 발행하였고, 이로 인해 독일의 물가는 1921~1923년에 약 1조 배 급등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경험에 비추어 헬리콥터 머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던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는 2002년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Ben Bernanke) 이사가 인용하면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버냉키는 경제 불황이 닥치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Fed 의장이 된 버냉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빠르게 금리를 낮췄습니다. 2006년 6월 5.2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2008년 12월에 0.25%로, 거의 제로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인 금리 인하만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라는 새로운 정책수단도 동원했습니다. 양적완화는 더 이상 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민간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더불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부실 금융회사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프리드먼이 언급한 ‘헬리콥터 머니’는 아니었지만 버냉키는 엄청난 양의 돈을 찍으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로 미국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양적완화를 통해 금융기관으로 흘러간 돈은 실물경제까지 흘러가지 못하고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며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4) 미국을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로 몰아넣었던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많게는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챙긴 것에 대해 많은 시민이 분노하며 2011년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에서 시민들은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득과 자산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2020년 3월 코로나19로 팬데믹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해 헬리콥터를 띄웠습니다. 성인에게 최대 1,200달러를 지급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2008년에 실시한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서 국채, 회사채 등을 매입해 금융회사로 돈이 흘러가면 금융기관이 가계와 기업에 그 돈을 대출하여 시중에 자금이 돌게 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2020년에는 금리 인하, 양적완화에 더해 헬리콥터 머니를 뿌렸습니다. 즉 중앙은행이 새로 화폐를 발행해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매입하면 정부에 돈이 흘러 들어가고, 정부는 필요한 곳에 직접 돈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2020년의 헬리콥터 머니는 프리드먼의 아이디어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모두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지급했다는 점입니다. 2020년의 헬리콥터 머니는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헬리콥터 머니가 흘러들어간 곳
세계 각국의 지원 내용을 보면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원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치열한 논의 끝에 전 국민에게 지급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직장을 잃은 사람과 매출이 많이 감소한 기업이 지원금이나 세금 또는 대출 혜택을 받았습니다. 다른 국가들도 피해 규모가 크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대상에게 선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프리드먼이 제시한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뿌리지 않고 일부에게 지급한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정부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살 때 나의 소득이나 자산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듯이 정부 역시 사용할 수 있는 또는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을 고려해 정책의 효과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부문에 재원을 투입합니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한 해 예산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생한 지출은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것입니다.
추가적인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는 해당 연도 예비비를 사용하거나 다른 항목의 지출을 조정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추가 재원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정부는 가계와 기업처럼 빚을 내 자금을 마련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국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0년에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네 차례 추가 경정***을 통해 총 12조 4천억 원 규모의 「긴급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마련했습니다. 2020년 9월에 발표된 4차 추가 경정 재원 7조 8천억 원 중 7조 5천억 원은 국채를 발행해 충당했습니다. 즉, 정부의 신용을 담보로 빚을 내어 국민들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 뉴딜정책 † 의 기본 틀을 제공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와 『인구론』 †† 으로 알려진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케인스는 “경제를 살리려면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를 채워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효수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효수요는 소득이 생길 때 지출로 이어지는 수요를 의미합니다. 맬서스도 “가난한 자의 주머니를 채워라. 그러면 소비가 촉진된다.”고 말했습니다. 케인스의 이론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돈이 지급되면 바로 소비로 연결되기 때문에 위축된 수요를 늘려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는 활동 제약으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계와 기업에 직접 헬리콥터 머니를 뿌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자 자금이 필요한 경제주체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줄어든 소득과 위축된 소비 수요, 생산 감소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책 수단은 과거의 여러 위기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고안된 경제 처방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는 여러 형태로 반복됩니다. 코로나19라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도입된 경제 처방전 헬리콥터 머니는 세계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까요?
* 내용 문의 또는 주제 제안: sycho@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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