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그림에서 두 사람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한국 경제가 참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하고, 또 한 사람은 한국 경제가 참 빠르게 ‘발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로 공감합니다. 두 사람의 말처럼 한국 경제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성장도 발전도 참 많이 했습니다.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 두 사람의 대화처럼 일상에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섞어서 써도 의사소통이 잘되지만, 개념적으로 두 용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실질 GDP로 판단하는 경제 성장
한 나라의 경제는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가 경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 규모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 기도 합니다. 그럼,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작아지는지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국내 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으로 경제 규모의 변화를 판단합니다. GDP는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새롭게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 즉 최종재의 시장 가치를 합한 금액을 뜻합니다.한 나라 안에서 1년 동안 생산된 최종재의 시장 가치를 모두 더해 나온 값인 GDP가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면, 그 나라의 경제 규모는 커진 것이고 경제는 성장한 것입니다.1)
한 해 동안 새롭게 생산된 최종재의 수량과 가격을 곱해 나오는 값이 그해의 GDP입니다. 그런데 그해에 물가가 올랐다면, 최종재의 생산량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그해의 GDP는 전년에 비해 증가할 수 있습니다.2) 이때도 경제가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인 경제 활동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물가가 올라서 GDP 가 증가했다면, 경제가 성장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물가 요인을 포함한 GDP와 물가 요인을 제거한 GDP를 따로 계산한 다음, 물가 요인을 제거한 GDP로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파악하게 됩니다.
1) GDP 통계는 한 분기씩 먼저 집계한 다음, 한 해를 기준으로 합산함. 우리나라의 GDP 통계는 한국은행이 산출함. 최종재(Final Goods)를 만들 때 투입되는 중간재(Intermediate Goods)의 가치는 GDP를 계산할 때 포함하지 않음. 예를 들어, 최종재인 자동차에는 타이어, 유리 같은 부품, 즉 중간재가 포함되어 있는데, GDP에 최종재와 중간재의 가치가 중복해서 계산되지 않도록 중간재의 가치는 포함하지 않음. 타이어와 유리가 중간재가 아닌 최종재일 때는 GDP에 포함됨.
2) 가격은 개별 재화와 서비스의 값을 의미함. 물가가 어느 수준인지는 여러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종합해서 판단함.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선별해 물가 지수를 산정함. 개별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시장 전반에 걸쳐 상승하게 되면 물가 역시 오르게 됨. 물가에 대해서는 <경제로 세상 읽기> 2021년 6월호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주목하는 이유’, 2022년 6월호 ‘경기 부진 속 물가 급등,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일까?’를 참고하기 바람.
먼저, 한 해 동안의 최종재 생산량과 그해 최종재의 가격을 곱해서 얻게 되는 값은 명목 GDP(Nominal GDP)라고 합니다. 즉, 명목 GDP에는 물가 요인이 반영되어 있 습니다. 반면 한 해 동안 새롭게 생산된 최종재의 가격을 특정 연도, 즉 기준 연도의 가격에 고정한 다음, 최종재의 생산량과 기준 연도의 가격을 곱해서 얻게 되는 값은 실질 GDP(Real GDP)라고 합니다. 즉, 실질 GDP에는 물가 요인이 제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물가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 활동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명목 GDP가 아닌, 실질 GDP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경제 성장률이라고 부르는 지표는 실질 GDP의 증가율을 뜻합니다. 한 해의 실질 GDP가 전년에 비해 증가하면 경제 성장률은 양(+)의 값을 갖게 되고, 전년에 비해 감소하면 경제 성장률은 음(-)의 값을 갖게 됩니다.
♦ 1953년부터 2022년까지 9,653% 성장한 한국 경제
한국 전쟁(1950~1953년) 직후 한국은 극도로 가난했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경제 개발 계획을 펼치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실제 어느 정도로 성장한 것일까요? 과거와 현재의 실질 GDP 규모를 비교해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GDP 통계는 1953년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림 1 에서 보듯이 1953년 한국의 실질 GDP는 20조 1,882억 원이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신 통계인 2022년 한국의 실질 GDP 는 1,968조 8,395억 원입니다. 현재의 실질 GDP 통계는 2015년이 기준 연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즉, 한 해의 최종재 생산량과 2015년의 가격을 곱한 값으로 실질 GDP를 추계한 것입니다. 이 통계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2022년의 실질 GDP는 1953년에 비해 9,653%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2022년 한국의 경제 규모가 1953년에 비해 9,653% 커졌다’, ‘한국 경제는 1953년부터 2022년까지 9,653% 성장했다’는 말 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림1 한국의 실질 GDP 변화
정부의 수출 주도 성장 정책에 따라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급속한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그림 2 에서처럼 1970년대 말 석유 파동*,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2020년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경제 규모가 전년 대비 감소한 적은 있지만,3) GDP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 경제의 규모는 확대되어 왔습니다.4)
그림2 한국의 실질 GDP 증가율(경제 성장률) 변화
♦ 경제 발전은 어떻게 파악할까?
이처럼 실질 GDP의 변화를 통해 한 나라의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로 커졌는지 또는 작아졌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 발전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경제 발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한 나라의 경제 규모가 양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경제 성장이라면, 양적인 경제 성장을 토대로 국민의 삶이 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경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 성장을 통해서는 한 나라의 경제가 양적으로 얼마나 커졌는지를 볼 수 있고, 경제 발전을 통해서는 한 나라가 경제 성장을 토대로 질적으로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GDP를 인구수로 나눠 1인당 GDP를 계산해 보면, 그 나라 국민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인당 GDP로는 평균적인 생활 수준 그 이상의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1인당 GDP가 높은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이 1인당 GDP가 낮은 나라 국민의 삶의 질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GDP 통계에는 새롭게 생산된 최종재의 생산량과 가격 외에 다른 요인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국가별 삶의 질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지수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5)
3) 경제 규모가 전년 대비 감소했다는 것은 전년 대비 실질 GDP 증가율, 즉 경제 성장률이 음(-)의 값을 갖는다는 의미임. 한국의 경제 규모가 전년에 비해 감소한 해는 1980년(-1.6%), 1998년(-5.1%), 2020년(-0.7%)임.
4) 경제 성장률이 전년에 비해 하락하더라도 경제 성장률이 양(+)의 값을 보이면 경제는 성장한 것임. 통계를 해석하는 법에 대해서는 <경제로 세상 읽기> 2023년 2호 ‘경제 기사 속 통계, 이제 어렵지 않아요’를 참고하기 바람
♦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수
먼저 UN의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입니다. UN은 사람, 즉 인간의 역량이 국가의 발전을 평가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인간 개발 지수’를 개발했습니다. 최신 자료인 2021년 통계를 살펴보면, 스위스(0.962), 노르웨이(0.961), 아이슬란드(0.959), 홍콩(0.952), 호주(0.951) 순으로 수치가 높았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19위(0.925)였고, 바로 다음으로는 미국(0.921)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HDI 수치로 판단할 때 한국 국민의 삶의 질은 1990년 0.737에서 2021년 0.925로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HDI는 ‘건강, 지식, 생활 수준’ 측면에서 삶의 질을 측정합니다. ‘건강’은 기대 수명으로, ‘지식’은 태어나서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 기간으로, ‘생활 수준’은 1인당 국민 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GNI)으로 살펴 봅니다. GNI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는 소득의 합계로, 이 금액을 인구수로 나눈 값이 1인당 GNI입니다.6) 약 200개 국가 중 한국을 포함한 66개국은 ‘매우 높은 인간 개발(Very High Human Development)’ 그룹으로, 49개국은 ‘높은 인간 개발(High Human Development)’ 그룹으로 분류되었습니다.7)
그림3 UN ‘인간 개발 지수’의 ‘매우 높은 인간 개발’ 그룹 상위 30개국(2021년 기준)
5) 삶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나 지수는 이 외에도 많지만, 이 글에서는 국제 비교가 가능한 대표적 지수 두 가지만 소개함. 한 나라 경제의 발전 정도를 파악하기보다, GDP 통계에서 나타나지 않는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는 용도로 이들 지수를 활용하기 바람.
6) GDP가 기업의 생산 측면에서 경제 활동을 집계한 것이라면, GNI는 국민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측면에서 경제 활동을 집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두 수치에 큰 차이가 없음.
7) HDI는 0부터 1까지의 수치가 부여되는데, 수치가 0.800 이상인 국가는 ‘매우 높은 인간 개발’ 그룹으로, 수치가 0.700~0.799인 국가는 ‘높은 인간 개발’ 그룹으로 분류됨.
다음으로 살펴볼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BLI)’입니다. BLI는 ‘주택, 소득, 고용,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 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삶의 균형’의 11개 영역에서 OECD 38개 회원국과 3개 비회원국(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의 삶의 질을 평가합니다. 이 지수에서 어느 국가 국민의 삶의 질이 가장 높은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건강을 유지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고용이 안정적이고 일과 삶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또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삶의 질은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습니다. 이 지수의 최신 자료는 2022년 판으로, 한국의 BLI는 어떤 수준인지 몇몇 영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 ‘교육’, ‘안전’, ‘시민 참여’ 영역에서 OECD 평균 수준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육’은 대학교 이상의 고등 교육을 마친 25~64세 성인 비중으로 판단하는데, 한국에서는 OECD 평균(79%)보다 높은 89%가 고등 교육을 마쳤습니다. 또한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문해력, 수학, 과학에서 OECD 평균(488점)보다 높은 520점을 받았습니다. ‘안전’은 혼자 걸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와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를 의미하는 살인 발생률로 판단합니다. 한국에서는 약 82%의 국민이 밤에 혼자 걸을 때 안전하다고 답했는데, 이는 OECD 평균(74%)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의 살인 발생률은 OECD 평균(2.6)보다 낮은 0.8입니다. ‘시민 참여’는 주요 선 거의 투표율과 법과 규정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한국 유권자의 투표율은 OECD 평균(69%)보다 높은 77%이며, 이해관계자의 참여 수준은 OECD 평균(2.1)보다 높은 2.9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좀 더 분발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요? ‘공동체’,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균형’ 영역에서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필요할 때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판단합니다. 한국에서는 국민 80%가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OECD 평균(91%)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삶의 만족도’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정도를 0에서 10까지의 숫자로 답하라는 질문으로 측정하는데, 한국은 OECD 평균(6.7)보다 낮은 5.8로 나타났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유급 근로 시간이 긴 근로자의 비중으로 판단하는데, 한국은 OECD 평균(10%)보다 높은 19.7%로 나타났습니다. 그림 4 는 한국, 일본, 미국, 독일의 11개 영역별 점수를 비교한 그래프입니다. UN ‘인간 개발 지수’, OECD ‘더 나은 삶 지수’의 결과를 놓고, ‘각국의 경제 발전 수준이 이렇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이 지수를 통해 각국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어떤 측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지는 뚜렷이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림4 OECD '더 나은 삶 지수' 비교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GDP, 경제 발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의 질 지수를 중심으로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의 개념적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 경제 성장 없이 경제 발전이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 성장을 통해 획득한 물질적 풍요는 더 나은 삶, 즉 경제 발전의 기본적인 토대이며, 경제 발전은 다음 단계의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은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성장과 발전이 모두 중요한 이유입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만드는 <경제로 세상 읽기>는 매달 1편씩 기획재정부 경제교육포털 경제배움e(econedu.go.kr)에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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