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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세상 읽기
‘Made In Korea’, 오징어부터 반도체까지

1964년 ‘무역의 날’이 제정된 이후 60년이 흘렀습니다.1) 무역의 날이 지정된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연평균 16.1%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2023년 세계 8위의 수출국으로 성장했습니다.2) 세계 시장에 ‘Made In Korea’ 를 알린 우리나라의 수출품은 그동안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요?

♦ 1960년 이전: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 보자!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적선인 앵도환이 한천3)과 건어물을 싣고 홍콩으로 향하며 우리의 수출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광물과 어류, 해조류 등을 중국, 일본 등 인접한 국가에 수출했습니다. 한국 전쟁 직후 이렇다 할 기술이 없어 붓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돼지털까지 주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1차 산품을 수출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무상으로 보내 준 원조 물자를 활용한 삼백(三白)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원조 물자를 가공해 밀가루(제분), 설탕(제당), 면직물(면방직)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생산품이 모두 흰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당시 정부가 취했던 경제 발전 전략은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이었습니다.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은 공업화를 추진하는 후발 국가들이 타국으로부터 수입하던 공산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며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선발 공업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후발 국가들이 주로 펼쳤던 전략으로 자원과 자본, 기술이 모두 부족했던 우리나라도 수입 대체를 통한 경제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산업 발달에 도움이 되었던 해외 원조가 195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국내 시장 규모가 적어,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으로 빠르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꾀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산에 필요한 기계나 설비와 같은 제품을 수입할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출 산업을 육성해야 했습니다.

1) 1964년 당시에는 연간 수출액 1억 달러를 돌파한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으나, 1987년 무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무역의 날’로 명칭을 변경함. 2012년부터는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했던 2011년 12월 5일을 기념해 날짜를 변경함.
2) 한국무역협회, 「수출입국 60년, 다시 뛰는 대한민국」, 2023. 12. 5.
3) 해조류의 일종인 우뭇가사리를 삶아 건조한 식품으로 젤리, 양갱 등을 만드는 데 쓰임.

♦ 1960~1970년대: 손재주는 우리가 최고지!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외화를 얻을 수 있는 수출 지향 공업화 정책으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수출을 우대한 금융 지원이나 세금 감면, 수출 보험 제도 마련, 대한무역진흥공사(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설립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출을 장려했습니다. 1967년에는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을 조성해 섬유 산업과 전자 산업 분야 수출 기업을 우선적으로 입주시키며 수출 관련 편의를 지원했습니다. 공업화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자재나 상품을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고속 도로나 철도를 건설하는 등 사회 간접 자본* 시설도 늘려 나갔습니다.

사진1 대구의 한 양말 공장

우리나라가 수출 산업으로 처음 육성한 산업은 경공업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노동력이 풍부해 가발, 신발, 섬유 등을 만드는 경공업이 발달하기에 유리했습니다. 경공업 제품은 곧 우리나라의 새로운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59년 미국에 스웨터 300벌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1962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신발을 수출했고, 1964년부터는 가발을 수출하게 되었습니다.4) 이후 1980년대까지 경공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산업이었습니다.


4)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 70년의 발자취」, 2016. 7. 31.
 

196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은 30%가 넘었지만,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공산품 생산에 필요한 기계, 수출할 때 필요한 선박 대부분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기계 국산화를 통해 외화 유출을 막고 기계 공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철강, 화학, 비철 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 6개 산업을 중점 육성하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전략을 1973년 발표했습니다. 중화학 공업은 다른 산업의 원재료가 되는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산업화 과정에 꼭 필요했습니다. 또한 중화학 공업은 경공업에 비해 부가 가치**가 높아 1980년대 초까지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목표를 충족하기에 적절한 산업이었습니다. 남북한 대립 상황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기 생산 시설로도 사용할 수 있어 중화학 공업 육성은 여러 이점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수출 진흥 정책과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으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971년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정부 목표보다 빠른 1977년에 100억 달러에 도달했습니다.
 






표1 우리나라 수출품 순위(1961년, 1970년, 1980년)

♦ 1980~1990년대: 독자적인 기술만이 살길!

중화학 공업에 대한 정부의 집중 지원으로 1979년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서 중화학 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51.2%를 넘어섰습니다.5) 하지만 1970년대 중후반에 발생한 두 차례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급격히 오르자, 세계적인 불황이 찾아왔고 석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대부분 국가에 서 투자를 축소하던 시기였지만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 육성을 위해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과잉 투자로 인한 낮은 공장 가동률과 수출 부진으로 투자의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부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생산성 향상, 경쟁력 강화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기술 보호주의에 따라 선진 기술을 모방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기술 개발 능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사진2 자동차 수출 부두

기업의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은 자동차 산업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높은 부가 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고, 기계나 철강, 화학 등 관련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중화학 공업화의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74년 정부는 자동차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며 수입을 대체하는 기존 정책에서 우리 기술의 고유 모델을 통해 완전히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장기 자동차 공업 진흥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1976년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가 탄생했고, 같은 해 에콰도르에 5대를 수출하면서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이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에는 ‘포니 엑셀’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고 그해 미국 내 판매 3위를 기록했습니다. 독자적인 모델 개발이나 연구가 중요해지면서 기업이 유럽, 일본에 현지 연구소를 설립하며 해외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해 나갔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은 1995년 100만 대를 돌파했습니다.6)

5) 한국경제 6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경제 60년사Ⅱ 산업편』, 한국개발연구원(2010)
6) 기획재정부, 산업연구원, 『2014 경제발전경험모듈화사업: 한국의 주력산업(자동차)』, 기획재정부(2014)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첨단 산업의 기술 개발도 이 시기에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미국, 유럽 등 세계적으로 첨단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일어난 것처럼 우리나라의 정부와 기업도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자 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1981년 ‘반도체 육성 장기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주요 대기업도 반도체 연구에 뛰어들어 해외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를 뜯어 분석하며 기술력을 높였습니다. 그 결과 1990년에는 16M D램7)을 일본, 미국과 거의 동시에 개발했으며, 1992년 64M, 1994년 256M, 1996년 1G, 2001년 4G D램은 우리나라 기업이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1992년 수출품 1위에 오른 우리나라 반도체는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기술 개발에 힘입어 우리나라 산업은 빠르게 발달했습니다. 수출도 크게 증가하며 1986년에는 최초로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1988년 무역 규모는 1,0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1995년에는 수출액 1,000억 달러, 무역 규모 2,000억 달러를 연달아 돌파했습니다.

표2 우리나라 수출품 순위(1981년, 1990년, 2000년)
7)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로, 반도체 시장 내 규모가 가장 큼. 16M, 64M 등은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을 의미하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양산한 64M D램의 경우 손톱만 한 크기이지만 신문지 512쪽 분량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음.

♦ 2000년대 이후: 이제는 콘텐츠까지!

2000년대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우리나라가 무역 흑자를 기록한 시기입니다. 2011년에는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했고, 이후로 2021년까지 매년 무역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수출품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품목은 반도체,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의 전자 산업 제품입니다.

문화 콘텐츠 분야도 새로운 수출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습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연속 증가한 문화 콘텐츠 수출은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연 1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수출액도 2006년 14억 달러에서 꾸준히 증가했는데, 특히 K팝과 같은 음향·영상 분야는 2014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며 2022년 역대 최대인 12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8)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자유 무역 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FTA란 체결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무역 장벽을 낮추는 협정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이나 마찰을 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에 1995년 가입했습니다. WTO는 회원국들이 합의를 통해 무역 협상을 진행하는 다자간 협상을 원칙으로 하는데, WTO의 회원국은 160개국이 넘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FTA는 뜻 맞는 나라끼리 체결하기 때문에 양자 간 실질적인 이익과 관심 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FTA 체결로 관세가 부가되지 않거나 낮은 관세가 적용되면서 해당 국가에서 가격 경쟁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고,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현재 아시아, 유럽, 중미 등 59개국과의 FTA가 발효되어 있습니다.9)

표3 우리나라 수출품 순위(2001년, 2010년, 2023년)
8) 한국무역협회, 「수출입국 60년, 다시 뛰는 대한민국」, 2023. 12. 5.
9) 관세청, FTA포털(www.customs.go.kr/ftaportalkor/). 2023년 1월 기준

♦ 다음 ‘Made In Korea‘는?

‘무역의 날’이 제정된 후 60년간 우리나라는 무역을 통한 세계화와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1964년 처음으로 1억 달러에 이르렀던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2023년 6조 3천억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무역 규모도 1964년 5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12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국은 1964년 41개국에서 2023년 240개로 증가했으며, 수출 대상 상위 5개국의 비중도 1964년 82.5%에서 2023년 54.5%로 하락하며 해외 시장이 넓어졌습니다.

이러한 결과에는 시대별로 변화해 온 수출품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철광석, 한천, 오징어 등 1차 산품을 수출하던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해 가공하고 조립하는 공정을 거친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시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최근에는 문화 콘텐츠와 같은 고부가 가치 산업이나 전기차 등 고기술 제품으로 산업을 고도화하며 우리나라의 수출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다음 ‘Made In Korea’는 무엇일 까요?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만드는 <경제로 세상 읽기>는 매달 1편씩 ‘경제배움e(econedu.go.kr)‘에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 내용 문의 또는 주제 제안: jjyong@kdi.re.kr

01
1960년 이전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산업으로 원조 물자를 가공해 밀가루, 설탕, 면직물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은?
  • 삼백 산업
  • 일차 산업
  • 가공 산업
  • 기초 산업
02
수입 대체 공업화 전략에 대한 설명으로 옮지 않은 것은?
  • 주로 공업화 후발 국가들이 선택하는 경제 발전 전략이다.
  • 우리나라는 수입 대체 공업화를 경제 발전 전략으로 선택한 적이 없다.
  •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전략을 뜻한다.
  • 생산에 필요한 기계나 설비를 수압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출 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03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 정부가 수출 진흥을 위해 펼친 정책이 아닌 것은?
  • 구로공단 조성
  • 자유 무역 협정 체결
  • 수출 보험 제도 마련
  • 대한무역진흥공사 설립
04
1970년대 우리나라 정부가 집중 육성한 중화학 공업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가발, 신발, 섬유 등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 경공업에 비해 부가 가치가 낮은 산업이다.
  • 우리나라의 풍부한 노동력이 바탕이 되었다.
  •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기 생산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05
우리나라가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처음 돌파한 해는?
  • 2011년
  • 2008년
  • 1995년
  • 1977년
06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 과정에서 새롭게 더해진 가치를 의미하는 용어는?
  • 시장 가치
  • 명목 가치
  • 부가 가치
  • 자산 가치
07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높은 부가 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이다.
  •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가 개발되었다.
  • 해외 현지 연구소는 독자적인 모델 개발을 위해 설립 하지 않았다.
  •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08
다음 빈칸에 들어갈 산업에 해당하는 제품으로 알맞은 것은?
  • 생사
  • 철강판
  • 컴퓨터
  • 문화 콘텐츠
정답은 pdf파일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