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ㆍ합병을 위해 2021년부터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총 14개 국내외 경쟁 당국에 기업 결합 승인을 요청하는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들 기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이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심사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는데 왜 다른 나라 경쟁 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걸까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승인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경쟁법 때문입니다.
♦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통한 발전
경쟁법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먼저 떠올려 봅시다. 판

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을 거래하며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경쟁을 통해 혁신을 거듭하며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성장하고 소비자는 만족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를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이라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품질 향상과 생산 비용 절감을 목표로 연구 개발에 매진할 것입니다. 기업이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개선한 냉장고를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의 냉장고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비자가 높은 품질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누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경쟁이란 누구나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정한 경쟁이란 기업이 상품의 가격과 품질, 서비스 등을 수단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혁신과 발전보다는 기존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데 몰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소비자 이익과 시장 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
그렇다면 실제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시장은 상품을 사고파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수,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거나 떠나기 쉬운 정도, 상품 가격과 품질의 비슷한 정도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크게 완전 경쟁 시장과 불완전 경쟁 시장으로 나뉩니다. 완전 경쟁 시장은 수많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동일한 품질과 가격의 상품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시장입니다. 이 시장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는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완전 경쟁 시장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시장에서의 가격 결정 과정을 이해할 때 기준이 되는 시장입니다. 즉, 완전 경쟁 시장이 제시하는 조건들에 가까워질수록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소비자는 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불완전 경쟁 시장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먼저, 상품의 공급이 오직 한 기업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독점 시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수의 기업이 유사하거나 동일한 상품의 공급을 주도하는 과점 시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처럼 저마다 독특한 맛과 인테리어 등을 내세워 경쟁하는 독점적 경쟁 시장이 있습니다.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는 다수의 기업이 유사한 상품을 공급합니다. 이때 기업은 공급하는 상품에 차별성을 두어 소비자를 확보하며 독점적 위치를 강화합니다.

♦ 경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될 경우, 가격 상승과 품질 저하, 혁신 둔화 등의 잠재적 위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독점 시장을 예로 들면, 시장에서 한 기업이 상품 가격과 생산량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이 경우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생산량을 줄이거나 완전 경쟁 시장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더 적은 양의 상품을 비싸게 구매해야 하는 불이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과점 시장과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 시장의 기업들은 독점 시장만큼 가격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과점 시장에서는 기업 간 상호 의존성으로 인한 암묵적 담합 가능성이 있고,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는 상품 차별화로 인해 완전 경쟁 시장보다 다소 높은 가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구조가 반드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은 기업들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촉진하고,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힙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경쟁법은 반독점법, 독점 금지법, 독점 규제법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립니다.
♦ 공정한 경쟁을 만들어 가는 방법
우리나라의 경쟁법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약칭: 공정거래법)」은 1980년에 제정되어 198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지난 40여 년간 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여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 남용이나 담합*과 같은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며, 소비자 이익을 보호한다는 기본 취지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에 적용을 받는 불공정 행위가 무엇인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공정거래법은 모든 시장 참여자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 또는 사업자 성격을 가진 법인의 불공정한 행위만을 규제합니다. 시장에서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거나, 새로운 경쟁 사업자가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등 다른 기업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기업끼리 담합해 가격을 올리거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특정 거래처를 차별하는 행위 등이 공정거래법에서 규제하는 불공정한 행위에 해당합니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에는 시정 조치와 과징금 등의 행정 제재가 부과됩니다. 만약 시정 조치에 응하지 않거나 경쟁 당국의 고발이 있을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법을 관장하는 기관을 경쟁 당국이라고 합니다. 경쟁 당국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고 다양한 기업들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 및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며, 소비자 권익 보호와 시장 구조 개선, 기업 간 상생 촉진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제도 중 하나로 ‘리니언시 제도(Leniency Program)’가 있습니다. 이는 담합에 가담한 기업이 위법 행위를 자진 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하면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해 주는 제도입니다. 2009년 마린호스
1) 담합 사건은 리니언시 제도가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업체의 자진 신고로 6개 업체가 7년간 담합해 온 사실이 적발되었습니다. 이 담합으로 한국의 정유 업체들은 경쟁 가격 대비 약 15% 높은 가격으로 마린호스를 구매해 왔고, 약 36억 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또한 마린호스 구매 비용 인상은 궁극적으로는 유가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까지 부담이 전가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본 및 유럽의 5개 업체에 제재를 가했고 자진 신고한 업체는 처벌을 면제받았습니다.
2) 리니언시 제도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6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각국의 경쟁법은 국경을 넘어 적용되기도 합니다. 이를 ‘역외 적용(Extraterritori

al Application)’이라고 합니다. 마린호스 담합 사건처럼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거나, 우리나라 기업의 행위가 다른 나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해당 나라의 경쟁법에 적용을 받습니다. 이는 기업의 행위가 다른 나라의 시장 경쟁과 소비자 이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2년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시도는 액화 천연가스 운반선 시장 독점 우려로 다른 나라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3)
1) 마린호스(Marine Hose)는 원유나 석유 제품을 유조선과 비축 시설 사이에서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특수 고무 호스임.
2)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마린호스 국제입찰담합 제재」, 2009. 5. 18.
3)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 기업 결합 신고 철회」, 2022. 1. 14.
♦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독점에 맞선 미국
경쟁법의 역사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트러스트(Trust)라는 기업 담합 형태가 큰 문제였습니다. 트러스트는 같은 업종에서 경쟁하는 여러 기업들이 하나로 합쳐져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말합니다. 트러스트로 인해 시장에서는 경쟁이 사라지고 가격이 올라가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890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독점 규제법인 「셔먼법(Sherman Antitrust Act)」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불법적인 제한과 독점으로부터 거래 및 통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법 제정을 주도한 셔먼 상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셔먼법」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셔먼법」을 보완하기 위해 「연방거래위원회법(Federal Trade Commission Act)」과 「클레이튼법(Clayton Act)」을 추가로 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불공정한 행위의 유형과 법 집행 절차를 구체화했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계속해서 경쟁법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경쟁법 체계는 일본과 독일 등 경쟁법을 도입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경쟁법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각국의 경쟁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 역시 40여 년간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경쟁법의 실효성과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며,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경쟁법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경쟁법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까요? 우리 모두가 공정한 경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장 경제의 발전 방향에 관심을 가질 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시장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만드는 <경제로 세상 읽기>는 매달 1편씩 ‘경제배움e+(econedu.go.kr)‘에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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