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인구’
1)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지역의 관계 인구란 그곳에서 살지는 않지만 취미, 업무 등 다양한 이유로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인구를 가리킵니다. tvN에서 방영되었던 체류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프로그램 공식 소개 글에 나와 있듯이, 도시에서만 살아온 두 고정 출연자는 시골의 한 슈퍼를 맡아 운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의 업무와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좌충우돌하지만, 슈퍼를 방문한 지역 주민들과 친분을 쌓으며 점차 적응해 나갑니다. 이 출연자들은 기간제 슈퍼 사장으로 일하면서 이 지역의 관계 인구가 된 것입니다. 최근 지역의 인구를 계산할 때 관계 인구도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도시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멈춰 있지 않는 도시,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입니다.
1)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서 관계 인구는 생활 인구로 표현되고 있음.
♦ 도시가 액체 같다고?
리퀴드폴리탄은 액체를 뜻하는 ‘리퀴드’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탄’을 합친 단어입니다. 도시를 거주지로서의 공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방식을 가진 관계 인구가 오가며 유동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관계 인구가 늘고 리퀴드폴리탄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먼저 교통망의 발달로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수월해졌습니다. 우리는 고속버스, KTX, 비행기 등 다양한 이동 수단으로 편리하고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자동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지만 KTX로는 2시간 반 만에 도착합니다. 과거에는 일이나 학업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때 아예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필요한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오는 일도 가능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 바깥으로 자신의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며 다양한 지역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꼭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온라인 플랫폼과 노트북을 이용해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각종 모바일 기기를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탐색하고 수집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며 노트북, 스마트폰 등으로 일을 하는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한곳에 머물지 않는 유목민(Nomad)에 빗대어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릅니다.
♦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이유
관계 인구라는 용어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를 경험한 일본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대도시로 인구와 자원이 집중되면서 성장 동력을 잃은 지역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기업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개척해야 하는 지역보다 조금이라도 산업

기반이 있는 지역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따라서 이미 동종 업계의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새로운 기업이 들어서게 됩니다. 여러 기업들이 한 지역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생산 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원도 함께 집중됩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기업들이 모여 있고 재화와 서비스가 풍부한 곳에 사는 것이 생활하기에 훨씬 편리합니다. 이를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해당 지역으로 이동할수록 소비 시장이 커지고, 이에 따라 기업은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시장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미 발달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을 일컫는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이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산업, 의료, 교육, 문화 등 전반적인 시설 및 자원이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하고 접근성도 높습니다. 과거부터 중앙 행정 기관이나 주요 대기업이 모두 서울에 있었고 그만큼 많은 일자리가 서울과 그 주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의료나 교육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보고 싶은 영화를 서울에서만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 지역 불균형 해결을 위한 노력
과도하게 집중된 인구로 인해 수도권에는 주거, 교통 및 환경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높은 집값은 서울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주거 환경이 좋은 동네는 수요에 비해 주택이 부족해지기도 합니다. 서울의 버스와 지하철 시스템은 수도권 내 대부분의 지역을 촘촘하게 이어 주고 있지만 매우 혼잡해 이용하기 불편할 때도 많습니다. 도로 위 교통난도 심각하고, 주차 공간이 부족해 주민 간 갈등으로 번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인구가 많은 만큼 각종 쓰레기가 넘쳐나고 환경 오염이 심화하는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지방은 인구가 줄면서 지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특히 청년 인구가 빠져나가는 경우,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산업 발전이 저해되거나 기존 산업이 쇠퇴할 수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연령대도 점점 높아지면서 낮은 출생률과 맞물려, 이대로라면 하나둘씩 유령 도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은 대한민국 헌법으로도 정해져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문제 해결과 균등한 지역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지방에 신도시를 만들어 수도권의 공공 기관, 연구소 등을 이전시킨 것이 그 사례입니다. 또한 지방의 교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하거나 새로운 지역에 철도를 개통하기도 했습니다. 각 지방 자치 단체(이하 지자체)도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결혼·육아 및 이주에 대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러 지자체의 갖은 노력에도 지방 인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고, 증가했더라도 그 또한 타 지역의 인구가 빠져나온 결과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이상 고정적인 인구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에 꼭 거주하지 않아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관계 인구가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지역을 살리는 ‘로코노미’
관계 인구를 끌어들이는 리퀴드폴리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많은 지역이 로코노미** 콘텐츠 창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중 성공적인 사례로 ‘서핑의 성지’ 강원도 양양을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서핑 하면 양양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지만, 이전에는 주변의 속초나 강릉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지역이었습니다. 특산물인 송이버섯, 연어 등을 위주로 농어업에 의존하던 양양이 서핑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이후부터였습니다. 양양의 해변은 대부분 직선형 해변으로 수심이 완만하고, 잔잔한 파도와 높고 센 파도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 서핑을 즐기기에 적합합니다. 이 때문에 서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가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차츰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1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핑 전용 해변 ‘서피비치’가 생기자 양양을 향한 서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평범했던 바닷가를 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며 마치 해외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특색 있는 포토 존을 설치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서피비치가 들어선 중광정해수욕장은 원래 군사 보호 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서핑 해변으로의 가능성을 본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인구 감소 문제를 고민하던 양양군의 적극적인 협조로 서피비치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핑뿐만 아니라 요가, 태닝, 근력 운동 등 다양한 콘텐츠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사람들을 더욱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서피비치로 인해 방문객이 늘자 서핑 용품점, 음식점, 민박 등 관련 상권도 덩달아 발달했습니다. 양양군은 민간 기업과 함께 ‘고고양양’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파도 상황을 체크하고, 서핑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방문객의 편의가 개선되면서 사람들은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양양을 찾게 되었습니다. 양양은 지자체와 민간의 많은 노력을 통해 인기 관광지를 넘어서, 여름마다 취미 활동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아지트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주민 등록 인구는 2만 7천여 명에 불과하지만 2023년 기준으로 무려 1,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양양에 방문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제주도보다 많은 수준입니다.
2) 이렇게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그곳만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소비자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도록 만드는 것이 로코노미의 핵심입니다. 방문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2) 2023년 기준 총 1,337만 529명이 방문함. 제주관광공사, 「제주 관광시장 동향 보고서」, 2024. 2.
♦ 나에게 맞는 리퀴드폴리탄을 찾아서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시골 쥐와 도시 쥐’에서 시골 쥐는 화려한 도시 생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도시 쥐와 함께 도시로 향합니다. 도시는 듣던 대로 진수성찬과 구경거리가 많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채 맛보기도 전에 고양이와 사람을 피해 도망쳐야 했습니다. 복잡하고 위험한 도시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시골 쥐는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처럼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거주지 및 생활 환경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콘텐츠가 풍족한 대도시나, 양양처럼 이미 알려진 리퀴드폴리탄이 아닌 또 다른 지역이 나에게 더 잘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점점 다양해지는 수요를 잡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농촌 체험, 한 달 살기 등 일정 기간 머물며 현지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의 생활 반경을 좀 더 넓혀서 이곳저곳 물 흐르듯 경험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지역마다 가진 특색과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나에게 맞는 리퀴드폴리탄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만드는 <경제로 세상 읽기>는 매달 1편씩 ‘경제배움e+(econedu.go.kr)‘에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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