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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세상 읽기
유동성을 규제하는 이유는?

  2025년 새해를 앞두고 정부는 은행의 유동성과 관련된 규제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국제 금융 규범에 따라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100% 수준으로 정상화하고, 농협·신협·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 기관에도 유동성 비율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정책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유동성’이란 무엇이기에 금융 규제의 핵심 기준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걸까요? 또 은행은 분명 민간 기업인데, 왜 정부가 이렇게까지 규제를 해야 할까요?


◆  유동성이란?

  경제학에서 유동성(liquidity)은 한 형태의 자산이 다른 형태의 자산 또는 재화로 얼마나 신속하고 편리하게 교환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것을 화폐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어떤 자산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쉽고 빠르게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전환되는가’를 나타냅니다. 지폐나 주화와 같은 현금은 손실 없이 빠르고 쉽게 다른 자산으로 교환되거나 교환의 매개수단이 되기 때문에 유동성이 가장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적금, 주식, 자동차, 부동산과 같은 자산은 다른 자산으로 교환되기 위해 더 긴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유동성이 현금보다 떨어집니다.

  그런데 유동성은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먼저, 기업의 입장에서 유동성이란, 당장 다가온 급여 지급이나 거래처 대금, 이자와 같은 단기적인 지출을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기업이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더라도, 현금으로 바로 쓸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다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산이 많지만, 단기적 유동성 부족으로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한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한편, 뉴스에서 흔히 등장하는 “유동성이 많다”는 표현은 거시경제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경제 전체에 거래와 결제에 쓰기 쉬운 돈과 신용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가리키는 말로, 통화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부르는 다른 말인 통화(currency)1)를 M1(협의통화)과 M2(광의통화)로 구분합니다. M1은 지급결제수단으로서 기능을 중시한 지표로, 현금통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을 더한 것입니다. M2는 M1에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등 M1보다 다소 유동성이 떨어지지만, 비교적 손실 없이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포함됩니다. 즉, M1과 M2의 구분에 유동성의 개념이 사용된 것이며, M1보다 M2가 유동성이 작은 지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이라고 할 때는 통상 M2를 의미합니다. 한편, M2에 2년 이상 장기금융상품 등이 포함된 지표도 있습니다. 이 단계부터는 통화지표라기보다 유동성지표로 분류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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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으로 미시경제학의 맥락에서는 ‘화폐’를, 거시경제학의 맥락에서는 ‘통화’를 각각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는 화폐보다 통화가 더 공식용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와 화폐는 궁극적으로 동일한 대상을 지칭합니다(정운찬·김홍범).
2) 유동성 지표는 Lf (금융 기관 유동성)와 L (광의유동성)이 있습니다. 유동성 지표는 통화지표에 더 많은 금융상품이 포함된 범위가 큰 지표입니다.



◆  은행에게 유동성이란?

  은행권에서도 유동성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로 예금을 받고 예금보다 높은 이자로 대출을 하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이때문에 많은 예금자가 동시에 돈을 찾으려고 할 경우, 자산은 충분해도 당장 현금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자산이 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은행에게 유동성이란 예금보유자들이 현금 인출을 원할 때 지체 없이 현금을 내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은행이 예금자의 인출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금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을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라고 합니다. 이때 중앙은행, 즉 우리의 경우 한국은행이 해당 은행에 현금을 직접 대출해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발표한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Liquidity Coverage Ratio)’의 유동성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단기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은행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규제 지표입니다. 국제적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바젤 Ⅲ ( Basel Ⅲ )* 체계에서 도입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30일간의 극단적 유동성 위기 시나리오에서도, 은행은 보유한 고유동성자산(HQLA, High Quality Liquid Assets), 즉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만으로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은행이 이 비율을 높이려면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해야 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은행의 수익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바젤 Ⅲ에서 정한 방침은 규제의 강화로 볼 수 있습니다.


◆  은행 규제와 중앙은행의 탄생

  유동성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면, 이제 다음 질문인 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한 이유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과 중앙은행의 탄생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은행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 금과 은을 들고 다니기 불편했던 상인들은 런던의 금세공업자에게 귀금속을 맡기고 대신 보관증서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팔 때 이 보관증서를 건네 주고, 이를 받은 사람이 세공업자에게 가져가 금과 은을 찾아갈 수 있다면 거래가 매우 편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공업자의 보관증서가 오늘날의 지폐(banknotes)처럼 거래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보관증서는 훗날 등장하는 은행권3)의 시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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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 본위제 아래에서는 금과 태환(兌換)되는 지폐를 의미하나, 오늘날에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여 현금으로 쓰는 지폐, 즉 국가의 신용을 배경으로 하는 불환 지폐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보관증서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자 금세공업자의 역할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금과 은을 보관해 주던 이들은, 점차 보관증서를 확인 후 지급을 대신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대출까지 제공하는 등 오늘날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사람들이 맡긴 것을 모두 한꺼번에 찾으러 오지는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즉, 실제 보유한 금속보다 조금 더 많은 보관증서를 발행해 대출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금창조(deposit creation) 또는 신용창조(credit creation)의 초기적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이 보관증서를 한꺼번에 들고 오기 시작하면, 금세공업자는 실제 보유한 금보다 더 많은 양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인출 요구가 동시에 몰리는 상황을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금세공업자 즉, 초기 은행 역할을 하던 이들은 매우 곤란해집니다. 이것이 소위 앞에서 말한 유동성 위기입니다. 이것만 문제는 아닙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금세공업자들이 사실상 은행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발행한 보관증서의 신뢰도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금 1온스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지만, 개별 금세공업자의 평판과 재무 상태에 따라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는 서로 달랐습니다. 신뢰가 높은 곳의 보관증서는 액면가에 가깝게 거래된 반면, 신뢰가 낮은 곳의 보관증서는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17세기 후반부터는 국가가 감독하거나 공적 성격을 가진 기관이 표준화된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66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스 방크가 유럽 최초의 공식 은행권을 내놓으며 공적 발권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후 1694년에는 영국이 영란은행을 세웠습니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상황은 달랐지만 혼란의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미국은 통일된 중앙은행이 부재한 가운데 발권 권한이 여러 민간 은행에 분산된 체제를 운영했습니다. 각 은행이 발행한 지폐의 가치는 은행의 건전성이나 지역적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졌고, 지급 능력이 취약한 은행이 발행한 ‘와일드캣(wildcat) 은행권’은 쉽게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같은 액면가의 지폐라도 실제 교환가치가 서로 달라지며 화폐의 기능이 불안정해졌고, 신뢰의 붕괴는 거래비용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3년 연방준비제도(Fed, Federal Reserve System)를 설립해 단일한 발권체계를 마련하고, 위기 상황에서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연쇄 파산을 막는 ‘최종대부자’ 기능을 갖추었습니다.
      
  은행과 중앙은행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면, 은행과 금융은 단순한 민간 산업을 넘어 경제 전체의 작동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급과 결제 기능이 특정 은행의 신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그 신뢰가 무너질 경우 충격이 개별 금융 기관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금융의 역사에서 규제가 미흡했던 시기에는 이러한 불안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그때마다 거래 위축과 신용 경색을 통해 경제 전체가 큰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은행 규제와 중앙은행의 존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축적된 제도적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  은행의 유동성 규제가 중요한 이유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은행의 유동성 규제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유동성은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자산을 얼마나 빠르게 현금이나 지급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입니다. 은행은 예금과 결제, 대출을 통해 경제의 혈관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가 맡긴 예금은 요구불예금과 같은 형태로 M1에 포함되어 이미 통화로 기능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한 은행이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를 겪게 되면, 예금 인출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도 불안이 확산되고 뱅크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유 은행 시대의 와일드캣 은행 사례나 이후 반복된 금융위기는 이러한 유동성 문제가 어떻게 신용 경색과 결제 기능의 마비로 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중앙은행과 은행 규제 제도는 ‘은행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위기 상황에서도 화폐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로 발전해 왔습니다. 결국 은행의 유동성을 규제한다는 것은 은행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돈과 금융 시스템이 위기 속에서도 작동하도록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논의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 역시 겉보기에는 새로운 기술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에는 여전히 ‘유동성과 신뢰를 누가 보장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차성훈 KDI 전문위원
econcha@kdi.re.kr

참고문헌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 내년 예금보호 한도 1억 원으로 상향… 새해 달라지는 금융제도」, 2024.12.31.
정운찬·김영식, 『거시경제론』, 율곡출판사.
정운찬·김홍범, 『화폐와 금융 시장』, 율곡출판사.
Bordo, Mic hael D.,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in Historical Perspective: Another Crossroad in Monetary History,” NBER Working Paper No. 29189, 2021.
Dwyer, Ge rald P., Jr., “Wildcat Banking, Banking Panics, and Free Banking in the United States,” Federal Reserve Bank of Atlanta Economic Review, 1996.
Encyclopaedia Britannica, “Wildcat Bank,” n.d.
Federal Reserve Bank of San Francisco, “Westward Expansion: Broken Bank Notes & Wildcat Issues,” n.d.
Mankiw, N. Gregory, 『맨큐의 거시경제학』, 김경환·김종석 옮김, 센게이지러닝코리아.
Mishkin, Frederic S., 『화폐와 금융의 경제학』, 김인준·심혜선·김진욱 옮김, 시그마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