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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세상 읽기
개인이 빚을 안전하게 갚을 수 있도록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456번, 성기훈 씨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퇴직금을 털어 연 치킨과 분식 장사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사채업자의 끝없는 위협과 독촉 속에서 어머니의 수술비조차 구할 수 없었던 그에게 도착한 것은 ‘합리적인 회생의 기회’가 아닌, 목숨을 담보로 한 ‘오징어 게임의 초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기훈 씨에게 게임 초대장이 아니라, 빚을 조정하고 갚아나갈 기회가 먼저 도착했다면 어땠을까요?


◆ 빚을 갚지 못하면 일어나는 일

  신용 사회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타인의 자산을 사용하는 대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성기훈 씨처럼 예기치 않은 해고나 사업 실패, 갑작스러운 의료비 지출이 겹치면, 성실한 채무자라도 계획했던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죠. 문제는 이러한 연체가 반복되거나 일정 기간 지속될 경우, 채무자가 정상적인 상환 상태로 복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연체가 길어지면 기한 이익이 상실돼 빚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한 이익이란, 빌린 돈을 당장 한꺼번에 갚지 않고 약속된 날짜인 만기가 올 때까지 나누어 갚거나 나중에 갚을 수 있는 이익입니다. 성기훈 씨가 치킨집을 차리려고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3년 뒤 원금을 상환하고, 그동안 매달 이자 50만 원을 내기로 한 조건으로 말이죠. 여기서 3년 뒤에 원금을 갚을 수 있는 혜택이 바로 기한 이익입니다. 그런데 기한 이익을 상실하면 은행은 밀린 이자뿐만 아니라 남은 원금 전체를 즉시 갚을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돈이 부족해진 성기훈 씨가 이자 50만 원을 연체하는 경우 기한 이익이 유지될 때는 연체된 50만 원에 대해서만 지연 이자가 붙습니다. 하지만 성기훈 씨가 이자를 계속해서 내지 못해 기한 이익을 상실하면 아직 갚을 날짜가 남은 원금 1억 원 전체에 대해서 연체 이자(기존 이자+가산 이자)가 부과되죠.
                          
  연체가 지속될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빚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채무자는 일상적인 경제 활동 전반에 걸쳐 제약을 받게 되죠. 국내외 금융 회사과 신용 평가사가 활용하는 연체 전이율(roll rate) 분석에 따르면, 연체 기간이 90일을 넘는 시점부터는 채무자가 다시 정상적인 상환 상태로 복귀할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전 세계 금융 표준을 정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90일 이상 연체를 사실상의 ‘부도(default) 상태’로 판단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에서도 이 기준에 따라 90일을 넘겨 연체한 채무자를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합니다.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면 금융 시스템 전체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신용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죠. 이 경우 단순히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이 제한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나 휴대폰 할부 구매, 정수기 등의 렌탈 서비스 이용 등 신용을 바탕으로 한 거래 전반에 제약이 따를 수 있습니다. 또한, 은행·보험사 직원이나 회삿돈을 관리하는 직무처럼 신용 상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야에 취업하려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죠.
 
  더 나아가 금융 회사는 연체가 길어져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된 채권을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고 전문 추심업체에 매각하기도 합니다. 추심 업체는 부실 채권을 낮은 가격에 매입한 뒤 이를 회수해 차익을 얻는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단기간 내 회수 가능성을 높이려 하죠. 따라서 채무자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강도 높은 추심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속 성기훈 씨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걸려 오는 독촉 전화와 문자로 인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연체가 장기화되면, 채무자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안전망

  이처럼 자력으로 상환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 사회에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법원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제도입니다. 성기훈 씨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볼까요? 만약 성기훈 씨가 대리기사 일을 하며 일정한 소득을 벌고 있었다면, 개인회생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법원이 성기훈 씨의 상황을 살펴 현실적으로 갚을 수 있다고 보는 상환 계획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3~5년간 성실히 빚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면책받을 수 있죠. 반대로 소득이 거의 없거나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였더라도 ‘개인파산’ 절차를 통해 재산을 정리하고 남은 채무에 대해 면책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 왜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빚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물론 성기훈 씨와 같은 개별적인 연체 사례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연체가 누적될 경우 사회 전반의 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실물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2002~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신용카드 부실 사태, 이른바 ‘카드대란’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수단 중 하나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카드 이용자가 대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신용카드가 무분별하게 발급되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 결과 신용카드 결제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 연체자가 급증하였고, 일부 신용카드 회사의 연체율은 두 자릿수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연체가 늘어나자 금융 회사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 개인과 기업의 대출 기준을 더 까다롭게 만들고, 대출 한도도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도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정부는 개인의 채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지 않고,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연체자를 금융 시스템에서 제외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시 경제 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안전망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 안전한 상환 환경을 만들어주는 개인채무자 보호법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마련된 제도들을 성기훈 씨가 제때 이용할 수 있었다면, 오징어 게임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법원의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제도는 이미 연체가 장기화되고 신용이 크게 훼손된 뒤에야 활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입니다. 이들 제도는 빚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을 때야 이용할 수 있죠. 우리나라에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연체 초기 단계에서 채무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만1), 채무자가 제3의 외부 기관을 통해 신청해야 하므로 절차상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사이 연체 기간은 길어지고, 채무자의 부담은 커지며, 한 번 손상된 신용을 회복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죠. 이 때문에 피해가 커지기 전에 금융 회사와 미리 소통하며 상환 계획을 조정하는 ‘사전 예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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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용회복위원회는 연체 단계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채무 조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체 30일 이하의 초기 연체자는 ‘신속채무조정’, 31~89일 사이의 단기 연체자는 ‘프리워크아웃’, 90일 이상 장기 연체자는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연체 단계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죠.


  「개인 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채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개인채무자 보호법)은 ‘사전 예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채무자가 자신의 상환 능력에 맞추어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만약 벼랑 끝에 몰린 성기훈 씨에게 목숨을 담보로 한 ‘오징어 게임 초대장’ 대신, ‘개인채무자 보호법’이라는 제도적 기회가 먼저 도착했다면 어땠을까요?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채무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성기훈 씨가 채무를 조정받으려면 법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 같은 제3의 기관을 찾아가 신청해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그는 연체 초기 단계에서 돈을 빌린 금융 회사에 직접 찾아가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절차를 건너뛰고 채권자와 마주 앉아 “지금 너무 힘드니 조금만 나중에 갚게 해 주세요”라거나 “길게 나눠서 천천히 갚겠습니다”라고 직접 상환 계획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제동을 걸어줍니다. 이 법은 5천만 원 미만의 대출에 대해 기한 이익이 상실되더라도, 갚기로 약속한 날이 아직 오지 않은 원금에는 연체 이자를 부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덕분에 채무자는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빚을 갚아나갈 여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드라마 속 성기훈 씨는 잦은 독촉과 위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지만, 이 법은 추심 연락을 일주일에 7회로 제한합니다. 특정 시간대나 장소에서의 추심 연락 금지도 요청할 수 있죠. 또한 금융 회사와 채무 조정을 논의하는 동안에는 해당 채권을 다른 추심업체에 매각할 수 없도록 하여, 채권자가 계속 바뀌며 겪는 혼란과 심리적 압박을 방지하도록 했습니다.


◆ 오징어 게임 초대장이 도착하기 전에

  물론 평소에 신용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신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지를 넓혀 주는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전벨트를 맸다고 해서 난폭 운전을 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채무자 보호법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해서 빚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빚은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현재의 기회를 사는 행위인 만큼, 자신의 소득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돈을 빌려야 하죠. 또한 평소 일정 수준의 자금을 확보해 예기치 못한 충격에 대비하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러한 채무자 보호 제도가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으며, ‘안 갚고 기다리면 나중에 다 탕감해 준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개인채무자 보호법의 취지는 빚을 무조건 면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채무자가 상환을 포기하지 않도록, 다시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성기훈 씨의 사례처럼 채무자가 과도한 채무와 추심 압박으로 인해 경제 활동에서 이탈하게 되면, 금융 회사는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의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연체 초기 단계에서 상환 계획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채무자는 경제 활동을 이어가며 채무를 갚아나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재기를 돕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제2의 성기훈 씨들에게 ‘오징어 게임 초대장’이 아니라, ‘빚을 안전하게 갚을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제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서휘원 KDI 전문연구원
hwseo9543@kdi.re.kr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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