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본위제와 그레샴의 법칙

노택선/한국외대 교수 | 2009년 05월호

 ‘금값’이라는 말은 오늘날 매우 비싸다는 의미로 쓰인다. 금이 이처럼 값비싼 물건의 대명사가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것은 금이 귀금속으로서 귀하고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화폐로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 금이 언제부터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20세기 전세계적으로 금본위제가 채택되면서 세계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금본위제가 어떻게 세계경제 발전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자). 이처럼 인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금본위제가 사실은 대단히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금본위제가 보편화되기 이전 세계 여러 나라들은 대체로 금과 은을 동시에 화폐의 기준으로 삼았던 이른바 복본위제(bimetallism)를 채택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귀금속으로서의 가치에 따라 금ㆍ은 사이의 교환비율을 정해 놓고 금화와 은화를 동전으로 만들어서 썼던 것이다.
 그런데 복본위제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화폐로 만들어진 동전의 액면가치는 그대로인데 귀금속으로서의 금과 은의 가치는 시장상황에 따라 계속 바뀐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처음 시장에서의 교환비율에 따라 주조된 금화와 은화는 실제 시장가치보다 어느 한 쪽이 필연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5대 1이었을 때 금 1온스로 액면가 1파운드짜리 동전을 만들면 은 1온스로 만든 은화는 0.067(15분의 1)파운드짜리 동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금의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 금의 가치가 떨어져 시장에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14대 1이 되었다면 은화는 동전으로서는 0.067파운드로 같은 가치를 갖지만 실제 귀금속으로는 0.071파운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처럼 은화의 가치가 높아지게 되면 사람들은 은화를 더 이상 동전으로 사용하지 않고 녹여서 귀금속으로 사용하게 된다. 녹인 은화는 더 많은 금과 바꿀 수도 있고 외국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은은 더 이상 화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다. 그레샴의 법칙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The bad money drives out the good money)"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화는 동전의 액면가격이 실제가치보다 더 높은 것이고, 양화는 동전의 실제가치가 액면가격보다 높은 것이다. 위에서 든 예를 보면 은화가 양화이고 금화는 악화가 된다. 악화는 화폐로 남아있게 되고 양화는 화폐가 아닌 귀금속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므로, 악화가 양화를 화폐의 유통시장에서 몰아낸 셈이 된다.
영국에서 1700년대 초에 실제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 1600년대 말, 브라질로부터 영국으로 대량의 금이 유입되면서 금의 가치가 하락했다. 금과 은을 모두 화폐로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은화의 액면가를 높여야 되는 상황에 직면했고, 당국에서는 금화의 가치를 점차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1717년 당시 조폐국(Mint)의 책임을 맡고 있던 뉴튼(만유인력의 법칙을 설파한 바로 그 뉴튼)에 의해 최종적으로 금과 은 사이의 공식적 교환비율이 확정되었지만 당시 은의 가치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은화는 화폐의 유통과정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1774년 25파운드 이상의 거래에서 은화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영국은 '사실상(de facto)' 금본위제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1821년 공식적으로 법에 의한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금본위제의 탄생은 이처럼 금과 은의 공식 교환비율을 잘못 설정한데서 우연히 생겨났던 것이다.

 

▶ 그레샴(1512-1572)_ 런던 출신의 상인이면서 왕실재정을 담당하던 관리였는데 실제로 그가 그레샴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내용을 언급한 적은 없다고 한다. 후세에 맥로드라는 경제학자가 잘못해서 그레샴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핫이슈더보기

추천자료

많이 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