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 위해 하는 전쟁은 없다. 전쟁은 오직 승리를 지고의 목표로 설정하며, 그를 위한 수단과 방법에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묻지 않는다. 물리력을 통해 상대를 강제하는 전쟁에서 인권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어떠한 물리력도 갖지 못한 아이, 노인 그리고 여성의 인권은 철저히 방기된다. 인류 전쟁사의 한 구석에는 약자에게 자행된 참혹한 폭력과 인권유린의 참상이 피와 눈물로 기록되어 있다.
남성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에서 침탈지의 여성은 침략지 남성의 성적 노예로 전락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전면전, 국지전, 내전, 테러전 등 모든 전장에서도 여성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또 유린되고 있다.
정신대. 이 한 단어가 우리를 짓누르는 무게는 어떠한가? 이 단어는 가혹하게 무겁고 끔찍하게 무섭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 땅의 꽃과 같은 소녀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정신대란 이름으로 전장으로 내몰려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 가혹한 고통은 인간의 언(言)과 설(說)로 설명할 수 없고 또 감당할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저지른 잔혹한 전쟁범죄다. 그것은 있었던 역사로 명백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면밀히 벌어진 명백한 범죄를 일본 정부는 부정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정신대 피해여성들의 참상을 기록하고 또 일본 정부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정대협’의 주도로 2012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세워졌다. 주택가 작은 집을 고쳐 지은 박물관이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구불거리는 골목길 안쪽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다. 대로변 비싼 땅이 아닌 골목길 안쪽 덜 비싼 땅에 박물관이 들어섰는데, 정신대 문제가 우리 정부의 적극적 활동보다는 풍족할 수 없는 민간단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박물관이 놓인 땅이 대변하고 있는 듯해 보는 이들은 처연하다.
골목길로 접근하면 박물관의 측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걸어 정면을 거쳐 반대쪽 측면으로 접근하면 무거운 철문 출입구가 나온다. 이 무거운 철문을 여는 것. 이 개문(開門)으로부터 박물관의 전시는 시작된다. 좁고 어두운 로비에서 표를 받고 뒤편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구석진 야외 뒷공간으로 연결된다. 이 협소한 통로를 거쳐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지하 전시공간으로 유도되는데, 이는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전장으로 내몰렸던 당시 피해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경험케 하려는 ‘의사(擬似)체험’이라고 건축가는 말한다. 지하 전시실의 음습한 공간 벽면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가 영사되고 있다. 이 공간 한 쪽에 허름한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올라서면, 불현듯 1, 22층을 관통하는 개방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뻥 뚫린 공간을 가득 메운 많은 시각적 전시 정보들이 쏟아진다. 무거운 철문을 열고 좁고 어두운 로비를 거쳐 협소한 통로를 통과한 후 음습한 공간의 벽면의 질감을 확인하고 허름한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 벼락 치듯 뚫려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잠시 주춤하게 된다. 입구부터 의도적으로 계획된 피해 여성들의 의사체험의 서사가 일순간에 해제되기 때문이다. 전시할 것(자료)은 많고 전시할 곳(공간)은 작기 때문이리라. 이 아쉬움을 2층 발코니에 형성된 추모의 공간과 1층의 야외 마당에서 달래야 하는 것이 또 서글프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그 존재 자체로, 이제는 백골이 돼버린 피해 할머니들의 넋과 백발이 된 생존 할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위무하며, 있었던 역사가 없었던 일이 될 수 없음을 증언하고, 치욕의 역사를 바로 보는 것에서 비로소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