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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 살아갑니다
김세윤 방송작가 2015년 06월호

산다

 

해머로 돌을 내리칩니다. ‘땅’ 소리만 남기고 해머가 튕겨져 나옵니다. 얼어붙은 겨울 땅에 단단하게 박힌 돌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땅, 땅, 땅, 땅. 있는 힘껏 몇 번을 더 내리쳐도 소용없습니다. 해머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당겨 보아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대고 밀어 보아도, 야속한 돌은 내내 그 자리. 지친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시린 겨울 하늘 위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어느 오후.

 

안락한 극장에 앉아 여유롭게 팝콘을 집어 올리려던 우리 손을 잡아끌어 성큼성큼 강원도의 겨울 산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영화. 외면하고 싶지만 이상하게 외면하기 힘든 첫 장면. 그 남자의 지친 표정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온종일 언 땅에 박힌 돌과 씨름하는 주인공 정철(박정범 분) 곁에 어느새 당신과 내가 서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 <산다>의 관객이 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면서 주연까지 맡은 박정범은 이렇게 말해요. “얼어붙은 땅에서 돌 하나 빼기도 힘든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온기가 없어서 아무리 온 힘을 다해 움직여봐도 안 되는 것이다. 가시덤불 안에 갇혀 노동을 하는 정철은 그래서, 끊임없이 얼어붙은 땅을 움직이고 싶어 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씨네21』 1005호 ‘<산다> 박정범 감독 인터뷰’ 중에서)

 

“얼어붙은 돌을 밀려고 하는 안간힘”이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라고 감독은 설명합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 싸우는 게 얼어붙은 겨울의 강원도에서 돌 하나 움직이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인간이 그렇게까지 무기력할까요? 세상이 그 정도까지 야박할까요? 언 땅을 녹이는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던가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일단 이 남자의 겨울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합니다.

 

첫 장면이 지난 뒤, 정철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그는 노동자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해머로 돌을 내리치는 게 오늘의 일감. 하지만 내일의 일감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유난히 길고 추운 강원도의 겨울이 공사현장마저 꽁꽁 얼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차라리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먹고살 길 막막한 계절에도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는 게 인간입니다. 부모님 잃은 충격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누나와 누나가 돌보지 않는 어린 조카까지 혼자 먹여 살려야 하는 게 정철의 운명입니다.

 

임금 떼먹고 팀장이 도망간 뒤 애먼 정철에게 책임을 묻고 임금을 독촉하는 현장 동료들. 부려만 먹고 제때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사장들. 언제 다시 봄이 올지 알 수 없는 강원도의 척박한 산과 들. 그의 삶은 정말 언 땅에 박힌 돌과 같습니다. 그의 노동은 ‘땅’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오는 해머입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움직일 수 없는 인생.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 하지만 그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기어이 가냘픈 희망 하나가 정철의 캄캄한 마음 한구석에 가로등처럼 매달리는 라스트 신. 160분을 기다려 마주친 그 5분의 희망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세상을 아주 잠깐, 아주 조금 흔들어 놓는, 정철의 그 짧디 짧은 안간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겁니다.

 

박정범 감독은 강원도 평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려서 겪은 고향의 추위만큼 살면서 겪은 도시의 시간도 참 매서웠다고 하죠. ‘정직한’ 노동에 ‘정당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는 이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생겼습니다. 혼자 힘으로 영화라는 언어를 배운 뒤 연기와 연출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역시 감독과 주연을 겸한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로 온갖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만 무려 17개. 첫 영화로 단박에 주목받은 그를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그 뒤 4년의 세월은 다시 돌아보기 힘든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언 땅의 돌 같은 세상을 함께 밀며 버텨온 절친한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입니다. 형제처럼 어울리던 두 친구 가운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한 친구 이야기로 <무산일기>를 만든 그였죠. 그런데 남은 한 친구마저 곁을 떠나 버렸으니….

 

<무산일기> 이후 꼬박 4년. 무려 쉰 번 넘게 시나리오를 고쳐 쓴 영화 <산다>는 정말 감독 본인이 ‘살기 위해’ 쓴 이야기라고 해요. 누구보다 간절하게 봄을 기다리는 남자 정철의 아주 길고 추운 겨우살이는 친구의 죽음을 본 감독 박정범이 절망해 ‘죽기’ 일보 직전, 간신히 힘을 냈던 겨우, ‘살이’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 가운데 ‘노(怒)’와 ‘애(哀)’로만 채운 165분. 솔직히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를 본다는 건, 누군가의 ‘시간’을 체험하기 위함입니다. 스크린 속 ‘사건’을 구경하는 여느 영화들처럼 마냥 즐거울 순 없겠지만, 스크린 너머 누군가의 ‘시간’을 짐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엔 또 나름의 보상이 따릅니다. 단조로운 구질로 꾸역꾸역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으며 기어이 완투하는 투수를 볼 때와도 같은, 상대를 압도하는 에이스는 아니지만 자기 몫의 9회를 끝까지 책임지며 사력을 다해 역투를 펼친 뒤 마운드를 내려가는 패전투수의 뒷모습과도 같은, 인간의 어떤 숭고한 안간힘이 만들어낸 165분의 ‘시간’이 관객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건 결국, ‘허기’를 달래려는 몸부림과 ‘온기’를 느끼려는 발버둥의 총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본다’는 건 결국 외로운 그 사람의 불 꺼진 마음에 작은 가로등을 달아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얼어붙은 세상을 움직이려 발버둥치는 남자 정철에겐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신과 나의 온기가 필요합니다. 긴 겨울밤, 그냥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법 든든해지는 화롯불처럼 자신의 긴 이야기를 보고 들어주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힘이 날 테니 말입니다. ‘동정’은 편을 가르는 사람의 시선이고 ‘연민’은 곁을 내주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디 여러분께서 정철을 동정하기보다는 연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 <산다>에 당신의 곁을 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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