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에선 지금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이론이 화두다. 경제발전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투자기회가 점차 소멸돼 과잉저축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경기침체 및 초저금리 현상이 지속된다는 이론이다. 1930년대 미국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던 한센 교수의 이론인데, 80여년 만에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 간 논쟁을 계기로 최근 재차 부각됐다. 이 이론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국내 경제에 있어선 경기회복세 부진 지속이 급격한 인구고령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장기침체 현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진전되는 경우 소비가 부진해지며, 소비 부진이 예상되는 경우 국내 투자 또한 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20여년 동안 일본이 경험했던 현상으로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국내 연관산업 생산 및 고용 확대를 통해 장기침체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유효한 방안이다. 다행히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인구구조가 비슷했던 일본의 199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5%, 수출기여도가 0.36%p였던 것에 반해, 2014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3.3%, 수출기여도는 1.5%p로 성장률 대비 수출기여도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훨씬 높다. 이는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 정도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반드시 밟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향후 국내 경제운용은 제조업, 서비스업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혁신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초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이 필요하고, 이는 효율적인 금융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혁신은 위험부담이 크지만 성공할 경우 큰 보상이 수반된다. 기업의 혁신활동을 금융이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선 위험을 파악하고 인수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금융회사가 단순한 금융중개 기능만을 수행하거나 정형화된 위험만을 인수하는 데 익숙한 경우 금융은 혁신을 지원하기 어렵다. 그리고 금융이 혁신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기업과 금융회사 간의 인센티브를 일치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위험의 대부분은 금융회사가 부담하고 과실은 대부분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로는 금융의 혁신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기 어렵다.
아쉽게도 현재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기업의 혁신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문성과 지원체계가 미흡하다. 금리하락에 따른 순이자 마진 축소로 국내 은행들은 낮은 수익성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위험을 부담해본 경험이 부족해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술평가와 관련한 지원체계 역시 인센티브 불일치 문제를 갖고 있다. 기술을 평가하는 기관은 낮은 평가수수료로 인해 기계적인 평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고, 금융회사는 부담하는 위험에 비해 매우 낮은 보상을 받는 구조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다행히 금융의 실물경제 지원기능 강화 및 금융회사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금융개혁이 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로 현재 추진 중이다. 금융이 실물경제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선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모험자본을 실물경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금융회사가 모험자본 공급에 따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정부는 검사·제재 관행 쇄신, 금융규제 틀 전환, 기술금융 안착·발전, 핀테크산업 육성, 자본시장 활성화, 금융산업 외연 확대의 금융개혁 6대 세부 목표를 설정해 추진 중이다. 이번 금융개혁을 계기로 국내 금융산업이 환골탈태할 수 있고, 정책당국·언론·국민들도 금융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하나의 독자적 산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금융회사가 경쟁적 시장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금융생태계가 조성될 것이고, 혁신과 창조를 위한 모험자본이 실물경제에 원활히 공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