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을 더듬어 오늘은 홀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어떤 이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 된다. 나는 강원도 바닷가 근처 동네에서 놀며 자랐다. 매일 바다를 보며 자란 것은 아니지만 비릿한 바다냄새는 친근하다. 날씨가 더워지니 탁 트인 바다 생각이 나고, 곧이어 바다와 닮은, 아직도 그곳에서 자식을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가 그립다.
모든 그리운 것은 기억 속에 존재한다. 예술 창작물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탄생되지 않는다. 기억 못 할지라도 언제 어디에선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본 것들의 기억이 영감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어느 찰나 예술가의 창작에 반영되고 또 그리움에 허기지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집밥이 그리워진다. 이렇듯 한 인간의 기억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하지만 항상 좋은 기억들만 저장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기억하기 싫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기억하고 싶어도 망각되는 것들 또한 있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삶의 연속에서 요즘은 패스트푸드와 같은 캘리그라피에 떠밀려 우리 고유 예술인 서예가 대중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 서예 혹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캘리그라피는 서사와 기록, 장식적 이미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다. 때로는 눈과 머리가 알아채지 못해도 가슴과 손 그리고 우리의 피는 기억하고 있다. 항상 먹던 어머니의 집밥을 가장 그리워하듯 우리는 우리 고유의 글씨를 좋아한다. 맛보지 못한 호기심의 맛도 좋지만, 맛보지 못한 것이 최고의 맛일 수는 없다. 결국은 세월의 체에 걸러진 잠재적 기억 속의 글씨를 배반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