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불평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경제학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소득불평등 현상은 언제나 있어 왔던 문제이고 경제학의 오랜 연구 주제 중 하나인데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소득불평등도가 심화되고 있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반복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생활이 어려운 국면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제 악화가 많은 나라에서 내수를 침체시켜 기존 경기침체로부터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피케티(Thomas Piketty) 등의 학자들이 내놓은 소득불평등 완화 방안이 사회적인 논란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소득불평등 문제에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이유 하나가 현재 인도의 중앙은행 총재이며 시카고대 교수인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에 의해 제시됐다. 라잔은 2010년 발간된 그의 책 「폴트 라인(Fault lines)」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은 미국의 소득불평등 문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 30여년간 확대된 소득불평등 문제로 인해 미국경제는 소득재분배에 대한 압력을 받게 됐고, 이것이 상환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금융 남발로 이어져 결국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마이클 쿰호프(Michael Kumhof), IMF의 로맹 랑시에르(Romain Ranci?re)와 파리 경제대학(Paris School of Economics)의 파블로 위난(Pablo Winant) 등은 「불평등, 레버리지 그리고 위기들(Inequality, Leverage and Crisis)」이라는 논문에서 라잔의 가설을 거시경제 모형으로 설명했으며, 이 논문은 2015년 3월 American Economic Review에 게재됐다.
대공황과 대침체 직전, 소득불평등과 가계부채 급증
쿰호프 등은 이론모형 설정에 앞서 1930년대 미국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과 2008년 대침체(the Great Recession) 국면에서의 소득불평등도 추이에 대한 정형화된 사실들을 제시했다.
첫째, 두 경기침체 직전에 소득불평등도와 가계부채가 동시에 급격히 증가했다. 상위 5% 고소득자들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3년 21.8%에서 2007년 33.8%로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9.1%에서 98.0%로 두 배 증가했다. 경제대공황 시기에도 같은 패턴의 소득불평등도와 가계부채의 증가가 있었다. 상위 5% 고소득자들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20년 27.5%에서 1928년 34.8%까지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9%에서 37.1%로 두 배 늘어났다.
둘째, 이러한 가계부채의 증가는 하위 소득계층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위 5% 소득계층의 가계부채는 1983년 62.3%에서 2007년 147.3%로 두 배 이상 높아졌으나, 같은 기간 동안 상위 5% 소득계층의 가계부채는 60% 수준에서 유지됐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급속히 증가한 가계부채는 거의 전적으로 하위계층의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 대공황 때에도 하위계층의 부채 증가가 두드러졌다. 두 경기침체 국면의 배경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모기지 부채 증가와 부실화에서 비롯됐다면, 1930년대 대공황은 신차(新車) 구매에 따른 부채 증가와 부실화에서 비롯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셋째, 소득불평등뿐만 아니라 부(富)의 불평등 역시 금융위기 직전 확대되고 있었다. 상위 5%의 부의 비중은 1983년 42.6%에서 2007년 48.6%까지 확대됐다. 대공황 당시에도 상위 1%의 부의 비중은 1920년 34.9%부터 1928년 47.5%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1930년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는 모두 소득불평등 증가,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증가, 부의 편중 심화라는 배경 아래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를 발생시키는 경로를 어떻게 거시 모형상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쿰호프 등은 대표 소비자를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으로 나눠 저소득계층이 내생적으로 채무불이행 결정을 하는 과정을 동태확률일반균형(DSGE; 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 모형으로 설명했다. 모형 안에서 고소득층은 자신의 효용함수에 금융소득을 포함하고 있어 소득 증가의 상당부분을 소비에 사용하기보다는 저소득층에 대출하는 형태로 금융 자산을 증가시키게 된다.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소비를 확대할 수 있으나, 이 결과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급상승하고 금융 부실화가 진행돼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저자들은 모형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2008년 대침체 당시의 미국 상황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 논문은 소득불평등이 금융위기를 야기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첫 번째 이론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
“실물경기 확대와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위기의 원인”
쿰호프 등의 모형은 미국의 두 차례 금융위기가 소득불평등 확대로 야기됐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소득불평등도의 확대를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일반화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첫 번째 실증분석 답을 준 논문이 럿거스대(Rutgers University)의 마이클 보르도(Michael Bordo)와 UC데이비스대의 크리스토퍼 마이즈너(Christopher Meissner)의 「소득불평등이 금융위기를 야기하는가?(Does inequality lead to a financial crisis)」라는 논문으로 2012년 Journal of International Money and Finance 에 게재됐다. 이 논문에서 보르도와 마이즈너는 1880년부터 2008년에 걸친 14개 선진국 패널데이터를 이용해 과연 소득불평등이 금융위기를 야기한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보르도와 마이즈너의 실증분석은 두 단계로 이뤄져 있다. 먼저 국가 전체의 신용증가가 은행위기의 가능성을 높이는지를 패널 로짓(Panel Logit) 모형으로 추정하고, 다음으로 상위 1% 소득 비중으로 대표되는 소득불평등도의 증가가 신용 증가의 원인이 되는지를 분석했다. 실증분석 결과 신용증가가 은행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증거는 찾을 수 있었으나, 소득불평등도의 증가가 신용 확대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신용증가의 원인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단기 이자율이었다. 즉 소득불평등이 아니라 실물 경기 확대와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신용증가와 은행위기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르도와 마이즈너의 연구에선 소득불평등이 경제위기를 가져온다는 쿰호프 등의 모형이 선진국 전반에 적용된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소득불평등도의 확대가 미국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 라잔과 쿰호프 등의 가설은 우리 경제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십수년간 소득불평등 확대와 가계부채 급증을 동시에 안고 왔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저소득층에 대한 실질적인 재분배 정책보다 손쉬운 신용카드 대출이나 부동산 대출 기준 완화 등의 조치로 스스로를 속이며 미봉책을 쓰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소득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적 맥락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윤리적 맥락에서 모두 중요한 주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소득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때로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치닫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소득불평등이 야기하는 경제적 비효율 문제는 이론과 실증 근거로 엄밀하게 검증돼야 할 주제이며, 분석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또 경제학적인 논리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다.
* 이 글에서 소개한 논문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Kumhof, Michael & Ranci?re, Romain & Winant, Pablo, 2015. “Inequality, Leverage and Cris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5(3), 1217~1245
Bordo, D. Michael & Meissner M. Christopher, 2012. “Does Inequality lead to a financial crisis?” Journal of International Money and Finance 31, 2147~2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