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리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에 나타나고 있는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고 봄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농민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비싼 농산물 가격 탓에 주부들도 울상이다. 최근 한반도에 예상치 못한 겨울철 한파와 여름철 폭염 그리고 열대야, 짧아진 봄과 가을 등의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사계를 자랑하던 한반도에서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의 아열대 기후대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일부 남부지방에만 서식하던 대나무의 분포범위가 이제 북한까지 확장됐고 그동안 수입해 먹어왔던 망고·파파야 등 열대작물의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에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로 한반도 생태계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예측에 따른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의 기후변화연구부에서는 이러한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의 영향과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최초 ‘국가 생태계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연구 시작
국립생태원은 ‘세계적인 생태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환경의 보전과 생태문화 확산을 도모해 지속 가능한 미래 구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2013년 3월 임시 운영을 시작으로 같은해 12월 정식 개원했다. 지난해 12월, 개원 1년 만에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하루 평균 약 3,400명의 방문자가 국립생태원을 찾는다. ‘또 하나의 작은 지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에코리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온대기후대를 포함해 열대·사막·지중해·극지대의 기후를 경험하고,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며 체험해 볼 수 있는 전시와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와 교육의 역할과 더불어 국립생태원에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생태연구를 선도해 국가 경쟁력을 높 이기 위한 생태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생태(eco)’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 익숙하지만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한다. 기후변화 중 가뭄에 의한 생태계 영향을 예로 들어 간단히 설명해 보자. 가뭄으로 식물의 성장이 부진해지면 식물을 먹이로 하는 초식곤충은 먹을 게 줄어든다. 이로 인해 먹이를 찾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먹이를 찾지 못한 곤충은 결국 죽게 된다. 곤충을 먹고 사는 새들은 이 줄어든 곤충으로 인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며 이제 막 태어난 어린 새들도 자라기 힘들어진다. 새가 사라지면 이들을 먹이원으로 하는 동물들의 생존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듯 생태계의 구성요소들은 여기저기 그물처럼 얽혀 상호 간에 영향을 준다. 결국 이는 인간의 삶에도 부정 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관련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인식이 제고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생태원 기후변화연구부에서는 기후 모델링, 보전생물학, 곤충, 식생, 야생동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선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영향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효율적인 국가 생태환경 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 생태계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연구를 시작했다. 생태계 리스크 평가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평가방법론을 개발하고 이를 시범·적용해 평가방법이 확립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연구 중이다. 평가방법이 확립되면 생태계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협(risk) 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별, 생태계 유형별 위협성을 평가한다. 평가가 마무리되면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대응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위협요인의 저감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또한 기후변화 영향에 따른 생물다양성(종·유전) 변화에 대한 통합적 모니터링을 시행 중이며 미래 양상 예측을 위해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건강성 변화 연구와 야생동식물의 생물계절학적 변화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최근 진드기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질병매개 곤충의 증가가 예상된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 사는 동물 역시 질병 증가와 건강에 대한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어 기후변화연구부는 질병매개 곤충과 질병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더불어 기후변화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발생 시기의 불일치로 인한 먹이공급 문제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육상생태계의 변화」라는 서적을발간해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바라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연구 현황을 보고해 향후 연구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또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연구는 다양한 학문의 접근과 융합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연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넘어 세계적 수준의 기후변화 연구 이뤄낼 것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선 생물들의 변화에 대한 야외조사가 필수적이다. 현재 연구원들은 지리산에서 야외조사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국내에서 많은 생태계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최적의 조사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 곤충, 조류, 양서·파충류, 소형 포유류 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각 분야의 연구자들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
야외조사를 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당혹스런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폭염특보가 내린 무더운 5월의 어느 날 연구원들이 지리산국립공원에 모여 야외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조사지 주변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비치고 무언가가 산에서 내려왔다. 다름 아닌 멧돼지 어미와 새끼들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갑작스런 그들의 출현에 깜짝 놀란 연구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늘도 무사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듯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 연구에는 조사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수많은 난관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적 수준의 기후변화 연구를 위해 국립생태원 기후변화연구부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타 연구 분야와 효율적 연구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오늘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