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스타트업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방한한 토마츠 벤처서포트의 기무라 마사유키 해외영업부장을 만났다. 토마츠 벤처서포트는 일본의 대형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토마츠의 자회사로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연결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스타트업 투자금액은 2006년 1,400억엔대에 이를 정도였지만 계속 감소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반토막이 됐다. 그러던 것이 최근 스타트업붐을 타고 2014년 1,100억엔대까지 회복됐다. 그리고 올해에는 2006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투자열기에 비해 의외로 투자금을 받은 스타트업의 수는 오히려 소폭 하향세다. 이에 대해 기무라 씨는 “아직도 일본에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창업이 활발하지 못하다.”며 “특히 실패하면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 때문에 일본에서는 좋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으로 덜 가는 편인데 이것도 최근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소수의 좋은 일본 스타트업은 몸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스타트업별 평균 투자금액은 2006년의 5천만엔에 비해 2014년 7,200만엔으로 휠씬 높아졌다. 그리고 몇백억원 규모의 거액 자금조달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스타트업 열기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대기업의 CVC 설립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는 대기업이 스타트업 투자를 목적으로 만든 벤처펀드를 말한다. 야후재팬 같은 인터넷기업이 YJ캐피탈이란 약 2천억원 규모의 벤처캐피탈을 만들어 모바일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추세는 인터넷이나 이동통신회사가 같은 ICT업계에 그치지 않고 제조업 그리고 심지어는 후지TV, 도쿄방송 같은 미디어로까지 이어져 이들 회사가 CVC를 만들고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본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에 관심이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토마츠가 매주 개최하는 모닝피치 이벤트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에 도쿄 신주쿠에서 일본의 대기업 신규사업담당자 150명이 모여 스타트업 4~5개사의 발표를 듣고 열띤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90회 이상 개최됐고 50건 이상의 사업제휴가 이뤄졌다. 이번 7월 16일에는 한국 스타트업 2팀이 참가할 예정이기도 하다.
일본 내의 스타트업 몸값이 너무 올라가고 투자할 스타트업의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이들은 해외에까지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라쿠텐은 호창성, 문지원 부부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비키(ViKi)를 2013년 약 2천억원에 인수했다. 이 밖에도 모바일게임회사인 DeNA는 비트윈 앱으로 유명한 한국의 VCNC에 투자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약 1조원을 투자했다. 이런 추세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일본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런 일본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열기는 한국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조금 다르다. 정부의 스타트업지원정책이 거의 없는 일본에서 이런 대기업의 움직임은 자발적인 것이다. 기무라 씨는 급격히 변화하는 디지털경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오픈 이노베이션’ 철학이 일본 기업에서는 대세가 됐다고 말한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오픈하고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처럼 완전히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 정말 필요를 느껴 한다기보다는 정부의 창조경제정책에 화답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쨌든 보수적인 문화의 일본 대기업들도 이처럼 변신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싫든 좋든 혁신을 더 빨리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국의 대기업들도 스타트업과의 소통이 필수다. 한국 대기업들도 결국 일본의 대기업들처럼 모두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