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옥련동 한 곳에는 백제 때의 나루터인 능허대터가 있는데, 이 일대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앞에 섬까지 보여서 송도라 불렸다. 지금의 송도 일대 너른 갯벌은 개간돼 국제도시로 개벽했는데, ‘송도국제도시’가 들어서기 전까지 송도는 작은 유원지 하나와 기념관이 하나 있는 한가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가 지휘하는 유엔군은 송도 앞바다 세 군데 지점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상륙작전은 성공적이었고 패퇴만 거듭하던 전쟁의 전황은 역전됐다.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수도 서울은 수복됐고 중공군의 개입 전까지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해서 북진할 수 있었다. 이후 남한 정권과 일반 대중들에게 맥아더는 대한민국 자유수호의 상징이 됐고 잊을 수 없는 은인이 됐다. 국가의 은인 맥아더와 그의 성공적인 작전수행 그리고 그로 인한 자유수호를 기념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세워졌다.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의지로 발주된 기념관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시비 28억원과 시민 성금 15억원을 동원해 완공됐다.
기념관은 청량산을 등지고 상륙작전이 감행됐던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기념관의 배치는 배산임수의 안정적 구도 속에서 기념 지점이자 상륙 지점을 향한 조망과 진입을 통해 강렬한 축을 만들어내고 있다. 관람객들은 기념관에 의해 형성된 축을 따라 진입하게 되는데 거대한 아치형 진입구를 통과하면 무거운 돌벽과 돌벽 사이에 형성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게 된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면 어느 순간 사방이 번쩍 트인 기념관 마당에 서게 되는데 이곳에 서면 송도 앞바다의 광막한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최종 기념 성지인 자유수호의 탑에 도달하게 된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기념관 자체가 기념적이라 할 만큼 그 조형이 묵직하며 강렬한 축을 통해 전개되는 진입의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김수근이란 건축가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시 기념관을 나와 일자로 뻗은 인권로를 따라 걷는다. 길 이름이 ‘인권(人權)’임이 새삼스럽다. 길 이름 ‘인권’을 보며 민족상잔과 맥아더, 자유수호, 반공과 그리고 좌익용공 등의 낱말들을 떠올린다.
송도 인근에 있는 송학동 자유공원에 올라가면 정면을 응시한 채 쌍안경을 들고 있는 맥아더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이 맥아더 동상을 향해 계란을 던지고 페인트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향해 증오의 시선과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러나저러나 관심은 없고 다만, 외국인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맥아더 동상에 페인트를 칠갑하는 자들의 의도와 신원을 내가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은 아마 자유수호와 반공 그리고 좌익용공 등의 용어 뒤에서 쓰러지거나 피 흘렸던 자들 또는 그런 자들의 힘없음에 자괴하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다가온다. 이 기념관은 무엇을 기념하는가? 국가의 은인인 맥아더인가? 그 맥아더에 의해 감행된 성공적 작전수행인가? 아니면 그로 인한 대한민국의 자유수호인가? 앞서 말했듯 기념관은 이 세 가지 모두를 기념하고 있다. 그를 위해 건축가 김수근은 그의 재능을 전력해 상륙작전의 영웅적 시퀀스를 완성해냈다.
그러나! 그러나 그 기념 뒤에 가려져 있는 암점(暗點, scotoma)은 보이지는 않으나 너무나도 선명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념의 기념적 용어 뒤에서 쓰러져 갔던가? 건축가 김수근의 탁월한 건축적 재능은 이 지점에서 반쪽의 성공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반쪽의 서글픈 기념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