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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야 해, 그러니 계속 숨을 쉬렴” -레버넌트
김세윤 방송작가 2016년 01월호


산다는 건 뭘까? 오늘은 이 문장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문.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평생을 바쳐 매달린 화두. 고작 영화 한 편으로 답을 찾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도리 없습니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를 이야기할 땐 결국 이 문장으로 시작해야만 합니다. 산다는 건 뭘까? 산다는 건, 그러므로 죽지 않는다는 건, 대체 뭘까?


영화는 19세기 서부개척 시대 미국 땅 어디쯤에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한 무리의 백인 사냥꾼이 미국 북서부 몬타나주 산골짜기를 헤집고 다녀요. 열심히 잡아 죽인 동물들의 가죽을 이제 막 배에 싣고 떠날 참입니다. 곧 큰 돈 만질 꿈에 부풀어 웃고 떠드는 사이 어디에선가 화살이 날아오네요. 웃던 남자의 목을 관통하고 떠들던 사내의 등에 꽂히는 화살. 자신들의 땅에서 가죽을 훔쳐가는 백인들에게 그 지역 인디언들이 퍼부어대고 있는 겁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리들 틈에서 홀로 침착하게 살길을 찾는 남자. 본인 또한 사냥꾼이면서 다른 사냥꾼들을 이끄는 가이드 휴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이 지역 지리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그가 필사적으로 동료를 구하러 다닙니다. 덕분에 10명 가까운 사람이 겨우 목숨을 건져 지옥에서 빠져나오죠.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이제부터가 진짜 지옥이라는 사실을.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 갈수록 식량은 부족해지며 하루가 다르게 날은 추워집니다. 할 수 없습니다. 사냥이라도 해서 고기와 가죽을 얻어야겠습니다. 휴가 숲 속으로 들어가 사냥감을 찾는 그때. 아뿔싸, 등 뒤에 거대한 회색 곰이 서 있군요. 곰의 발톱에 온몸이 찢겨 나갑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을 게 뻔합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그를 들쳐 업고 눈 덮인 험산준령을 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결국 무리의 리더 앤드류(돔놀 글리슨 분)가 묻습니다. 휴가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키다가 시신을 잘 묻어준 뒤 따라올 사람? 그 대가로 두둑한 돈을 준다는 말에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가 자원합니다. 휴 글래스의 하나뿐인 아들 호크(포레스트 굿럭 분)도 남기로 합니다.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존에겐 인내심이 없어요. 어차피 죽게 될 휴가 서서히 죽어가기를 기다리는 게 답답한 나머지 남몰래 그의 숨통을 끊으려는 찰나, 다급하게 뛰어와 제지하는 휴의 아들. 격투 끝에 존이 호크를 죽이고 휴는 눈앞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그를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존은 도망치듯 떠나버리죠.


설마 휴가 살아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혹독한 겨울 한복판에서, 성한 곳 하나 없는 맨몸뚱이로, 수천킬로미터 황무지를 헤치며 자신을 쫓아오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소름끼치도록 악착같은 생의 의지로 한 발 한 발, 존의 흔적을 따라 걷는 휴 글래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그리하여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남자는, 그렇게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1823년 필라델피아 출신 모험가이자 사냥꾼 휴 글래스가 실제로 회색 곰의 습격을 받고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죽기 전까지 그를 돌보고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라.’는 동료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휴를 버리고 달아난 존 피츠제럴드라는 남자도 실존 인물입니다. 배신감과 복수심을 연료 삼아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운 휴가 상처투성이 맨몸뚱이로 4천킬로미터를 걸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실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에 조금 살을 붙여 영화 <레버넌트>를 만든 겁니다.


<버드맨>(2014)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레버넌트>를 만들며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하죠. 첫째, 시간 순서대로만 촬영한다. 둘째, 인공조명은 사용하지 않고 햇빛과 불빛만을 사용한다. 셋째, <버드맨>처럼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된 롱샷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과연 놀라운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엄청난 스케일로 자연 풍광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밀한 디테일로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는 데 소홀함이 없습니다. <그래비티>(2013)와 <버드맨>으로 2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엠마뉴엘 루베즈키의 황홀한 영상, <마지막 황제>(1987)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세련된 음악, 여기에 무시무시한 열연을 선보인 두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의 연기까지. 상영시간 156분 내내 진정한 프로페셔널들의 열정과 재능이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솜씨 있게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빼면 뭐가 남을까요? 혹 줄거리가 너무 앙상하진 않은가요? 아들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이라니. 너무 흔한 이야기 아닌가요? 그거 하나로 156분을 끌고 가기엔 너무 단조로운 전개는 아닌가요?


아.니.다.라고 감히 변호하려 합니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복수극’이기에 앞서 ‘한 인간의 생존극’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죽인 원수를갚으려고 ‘살아남은’ 뒤가 더 중요한 영화입니다. 일단 ‘살아남은’ 뒤 남은 인생을 계속 ‘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복수심이 그를 일으켜 세웠지만, 그를 다시 걷게 만든 건 단지 복수심만이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천킬로미터 눈밭을 헤쳐 나간 원동력은, 복수에 대한 ‘구체적 의지’라기보다 삶에 대한 ‘막연한 본능’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존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쩌면 ‘존보다 먼저 죽지 않는 게’ 목적이었을 여정. 그리하여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휴 글래스가 어느 순간부터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영화입니다.


자, 이제 맨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질 차례입니다. 산다는 건 뭘까?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문. 고작 영화 한 편으로 답을 찾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레버넌트>는 나름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들에게 아버지가 몇 번이고 반복하는 이 대사. “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야 해. 그러니 계속 숨을 쉬렴.” 이것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이 영화의 단호한 대답이죠.


결국 산다는 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건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숨을 쉬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레버넌트>가 새삼 일깨웁니다. 더 거창한 삶의 이유를 찾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이보다 더 명쾌한 답도 없지 않은가요? 더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며 괜히 으스대는 인간이 될 바엔 그저 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사는, 조금은 겸손한 인간이 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도 같습니다.


아, 주의하세요. 죽지 ‘못해’ 억지로 사는 게 아닙니다. 죽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겁니다. 그리하여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한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휴 글래스입니다. 나에게 닥친 삶의 어떤 위기에서 일단 ‘살아남은’ 뒤, 남은 인생을 악착같이 계속‘살아내는’ 한, 우리는 또한 어느 정도는 숭고한 인간입니다. 곰의 습격을 받지 않고도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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