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출발한 신칸센 열차는 한 시간 남짓을 달려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역에 정차한다. 우츠노미야(宇都宮)는 오래전부터 도쿄와 일본 동북 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는데,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도치기현의 중심 도시로 건재하다.
나의 최종목적지는 일본 혼슈 북동쪽 끝단에 위치한 아오모리였는데, 잠시 우츠노미야에 들르기로 했다. 내가 이 도시에 머무르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지역 명물 교자를 먹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산되고 있는 건축석재를 보기 위함이다. 우츠노미야 오야지역에서 생산되는 오야석(大谷石)은 에도시대(1603~1867년) 중기부터 채석되기 시작했는데, 채굴의 기계화가 이뤄진 1960년 무렵부터는 채석량이 크게 증대됐다. 오야석의 석질은 유문암질 응회암으로 화강석에 준하는 물성을 띠고 있어 건축재료로 널리 쓰여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일본 내 제국호텔에 오야석을 사용하면서부터는 건축자재로서의 큰 명성을 얻게 됐다.
나는 교자 한 접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우츠노미야 어느 골목길에 있는 마츠가미네 천주교 교회(松が峰敎?, 이하 마츠가미네 교회)로 향한다. 이 교회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막스 힌더(Max Hinder)의 설계로 1932년 완성됐다. 로마네스크란 두터운 양식의 옷을 입고 있는 마츠가미네 교회는 선형공간의 바실리카형 평면을 기본으로 안쪽 깊숙한 곳에 지성소를 배치했고, 교회정면은 트윈타워 형상의 육중한 오야석으로 석재마감했다. 그러나 교회의 몸체는 20세기 근대와 더불어 완성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돼 있다. 무거운 돌을 쌓아올려 구조의 골격을 만들던 서구 고전적 조적식 구조방식이 철근콘크리트로 뼈대를 만드는 근대적 가구식 구조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교회는 근대 모더니즘의 기술적 성취에 기대어 몸체의 골격을 만들고 고전적 양식을 바탕으로 공간을 꾸리고 외양을 꾸몄다.
일본 속 스위스 건축가는 전통(고전적 양식)과 탈전통(모더니즘) 사이에서 주저하며 이것과 저것을 적당히 섞어놓았다. 제국주의시절 식민지에서 활동한 많은 식민국 출신의 건축가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식민국의 제국주의적 패권과 권위를 나타내기에는 밋밋한 형상의 모더니즘 양식보다는 화려한 고전 양식이 보다 효과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의 전통과 탈전통 사이에서 만들어진 마츠가미네 교회는 일본이란 지역적 요소도 품고 있다. 교회 내외부는 온통 오야석으로 마감됐는데, 벽안의 건축가는 지역적 색채 가득한 건축재료를 주요 마감재로 선택했다. 이는 지역 생산자재를 사용하면서 얻게 되는 경제성과 더불어 은은한 녹색을 띠는 화산암 계열의 거친 표면질감의 미적 효과를 동시에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교회 내부 바닥에 나무마루가 깔린 점인데, 비록 교회 내부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는 하지만, 나무바닥의 설치는 좌식 생활공간을 구성하는 일본 전통 건축의 관성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새로운 기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대단히 진보적이나 일상을 꾸리는 주거의 방식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교회는 이 보수적 관성을 발과 나무바닥이 접하는 익숙한 질감으로 살려 놓았다. 따뜻한 나무바닥을 밟을 때 느껴지는 잔잔한 진동과 삐걱거리는 기분 좋은 소음은 동아시아 전통 건축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안온함을 전해준다.
종교는 국경을 넘나들고 넘나든 곳 삶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일본에 전해진 새로운 종교는 새로운 믿음과 더불어 새로운 물리적 공간 또한 이식했다. 그 이식된 새로운 종교와 공간은 새로운 삶과 문화와의 이종교배를 통해 다시 그들만의 새로움을 잉태했다. 우츠노미야의 작은 교회를 보며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며 새로운 문화가 꽃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와 그들의 역사는 가깝고 먼 거리를 무시로 왕복하며 공통과 차이의 문화를 엮어냈다. 가깝고도 먼 곳의 집들을 둘러보며, 여기 우리의 집들과 삶을 비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