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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남구 기자의 도시농부도시에서 벼농사를 짓다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2016년 02월호



내가 소년기를 보낸 1970년대만 해도 벼농사에는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해야 했다. 우선 소를 이용해 쟁기로 논을 갈아엎고 물을 넣어 써레질을 했다. 못자리를 만들어 먼저 모를 키우고, 모내기철이면 마을 어른들이 모두 참가하는 두레를 조직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피 뽑기 등 김매기도 일일이 손으로 했다. 가물기라도 하면 물을 대느라, 홍수가 나면 쓰러진 벼를 세워주느라 북새통이었다. 가을이면 낫으로 벼를 베어 말린 뒤 묶어 낟가리를 지어놓았다가, 겨울 내내 훑태로 낟알을 훑었다. 족동(足動)식 탈곡기 정도가 일손을 크게 덜어주는 농기구였다.


지금은 이앙기, 콤바인 같은 농기계를 사용해 노동력 투입은 그리 많지 않다. 통계청이 조사한 2014년 논벼생산비 조사 결과를 보면, 10아르(300평)의 논에서 논벼 520㎏을 수확할 때 총생산비가 72만원가량인데, 이 가운데 노동비는 16만8천원에 그친다. 생산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25만원인 토지용역비이고, 위탁영농비가 10만7천원, 농구비가 6만원가량 든다.


여러 해 주말농장에서 밭농사는 했어도, 도시에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도쿄 특파원으로 일할 때 집 가까운 곳에서 벼농사를 짓는 걸 봤다. 운하에서 이어진 수로 근처에 있는 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가족이 자원봉사자로 참가했고, 나도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 김에 논을 구경하러 갔다. 개구리알과 올챙이, 논둑에 구멍을 뚫고 사는 가재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곤 했다.


귀국한 뒤, 지난해 나도 벼농사를 짓게 됐다. 생활협동조합 조합원 9가족이 고양시 벽제의 우보농장에서 손바닥만 한 다락논 두 배미를 빌려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모는 재래종 볍씨 10종류로 농장주가 길렀고, 우리는 농장주의 지도를 받아가며 모내기와 김매기, 벼 베기, 탈곡을 맡았다. 놀랍게도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매우 즐겁게 일을 했다. 물론 처음 해보는 모심기, 허수아비 만들기, 낫질, 훑태질에 호기심이 발동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볍씨가 싹을 틔워 줄기와 이파리를 피워가고, 꽃이 피고 수많은 볍씨가 열리는 신기한 자연의 조화에 마음이 더 끌렸을 것이다.


이름조차 모르던 재래종 볍씨로 벼농사를 짓는 일은 내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재래종 벼는 대체로 키가 컸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 새누리인데, 국립종자원이 밝힌 것을 보면 키가 78㎝다. 그런데 재래종 메벼인 북흑조는 어른 키만 하다. 줄기가 까만 품종도 있고, 볍씨가 검붉은 색을 띠는 품종, 볍씨에 달린 뾰족한 수염 같은 까락이 5㎝를 넘는 품종도 있었다. 벼를 베어 묶어 세워놓고 보니, 모던한 꽃꽂이 작품 같았다. 특히 북흑조는 서양의 갈대 비슷한 식물인 팜파스그라스(Pampas grass)를 떠올리게 했다.


수확한 벼는 박박 문질러 까락을 제거하고 쭉정이를 바람에 날려보내고 알곡만 챙겨 잘 말렸다가 소형 정미기를 이용해 도정했다.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고 싸라기(부스러진 쌀알)로 떡을 해 함께 모여 잔치를 하고, 수확한 쌀을 나눴다. 기대했던 것보다 밥맛은 좋았다. 어려서 농사를 지어봤다고 이런저런 일을 시범 보이고, 일찍 일을 끝내려고 꽤 중노동을 한 나는 이제 됐으니 그만 하자고 생각하는데, 함께한 이들은 올해 또 짓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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