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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아들의 첫 경험
정민승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2016년 03월호

얼마 전 아들을 이발소에 데리고 갔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 이마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어떤 때는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미룰 수가 없었다. 이발소로 가는 길에 만난 아이스크림가게 앞에서 잠시 주춤대긴 했지만, ‘아이스크림은 머리를 깎은 다음에 사주겠다.’는 아빠의 약속을 받아낸 아들은 이발소까지 상당히 가벼운 걸음으로 갔다. 달려가다시피 했다.



“머리 깎으러 왔어요.” “네에, 가위 쉬악쉬악 왔떠요.”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이라 아들 차례는 금세 왔고, 높은 의자에 앉은 아들 위로 큰 보자기가 덮였다. 제 엄마와 몇 번 와본 곳이라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두어 달에 한 번 찾는 곳. 낯선 풍경에 아들 표정은 굳어졌다. ‘뽀로로를 틀어줘야 할 때가 왔구나!’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내려오려고 하거나 떼를 쓸 땐 동영상을 좀 틀어줘, 위험한 가위가 얼굴 앞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럴 땐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아내의 이야기도 있던 터였다. “두어 달 뒤에 지금 이 모양이 되도록 자르면 되겠죠” 동영상을 찾기도 전에 이발사의 가위질은 시작됐다.



예상과 달리 아들은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간혹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대단히 양호한 자세로 이발에 임했다. “이 정도면 안 보여줘도 되겠는데요” “아, 네…, 그러네요.” 휴대폰을 보여주기 위해 자세를 잡던 이 아빠는 머쓱해졌다. 한바탕 소동을 각오하고 왔던 터라 (과장 좀 하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복직 후 바빠서 띄엄띄엄 봤더니, 그 사이 이렇게 의젓해졌구나….’



이발사는 손으로 가위를 놀리며 말을 이어갔다. “뭐든 처음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아드님은 아마도 처음 머릴 깎을 때 기억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 또래 애들이 이렇게 앉아 있기 힘들죠.” 이발사는 아이들 이발을 숱하게 해봤다며 믿음을 강요했다.



생각을 해보니 과연 이발사의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아들의 첫 이발은 그야말로 놀이였고, 작은 축제였다. 기저귀만 찬 채 높은 식탁의자에 앉은 아들 위로 아빠가 황금박쥐 가운을 걸쳐줬고, 엄마 아빠 웃음소리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첫 이발 의식을 치렀다. 휴직 당시 아내가 직접 이발할 요량으로 준비해 놓은 전용 가위와 전동 바리캉을 이용해서 깎았는데, 우리 부부는 번갈아 ‘엉망’으로 잘라가며 즐거워(?) 했다. “아빠가 아들 인물 다 망쳤네, 망쳤어.” “애 엄마가 아들을 영구로 만들었구먼.” 한 사람이 자른 머리를 다듬겠다며 다른 사람이 또 자르고, 그러면서 아들 머리는 우스꽝스럽게 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의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들은 이렇게 첫 이발에 대한 기억이 좋았고(적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휴대폰 동영상 없이도 이발을 할 수 있게 된 덕택에 이 아빠는 아들 옆자리에 앉아 같이 머리를 깎는 호사도 누렸다. 눈을 감은 채 이발사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잖아요. 뭘해도 지금은 처음인 게 훨씬 더 많을 때니까….’ 마음 같아선 아들의 모든 첫 경험 현장에 있고 싶지만, 복직한 아빠는 바쁘다. 아빠는 거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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