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무렵부터 오락가락하던 장맛비는 오후가 되면서 굵어졌고 그렇게 한차례 퍼붓고 나면 다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강영숙: 빙고의 계절》
‘사이시옷’은 ‘사잇소리현상’을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부호입니다. ‘사잇소리현상’이란 명사와 명사가 합성어를 이루는 과정에서 두 말 사이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이 된소리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말하자면, ‘사이시옷’은 특정한 조건에서만 쓰이므로 그 조건만 잘 정리해 두면 생각보다 쉽게 맞추어 적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촛불(초+ㅅ+불), 이야깃거리(이야기+ㅅ+거리), 먹잇감(먹이+ㅅ+감), 베갯잇(베개+ㅅ+잇)’ 등에서 보듯이 사이시옷은 명사 합성어 사이에서만 쓰입니다. 사잇소리현상은 명사와 명사가 합쳐질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햇님’으로 적으면 틀린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님’은 명사가 아니라 접미사이기 때문입니다. ‘*호랑잇님’이나 ‘*교숫님’ 같은 표기를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명사와 접미사 사이에서는 사잇소리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발음도 [*핸님]이 아니라 [해님]이 맞고 표기도 ‘해님’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이시옷은 명사와 명사 사이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뒤에 오는 명사가 된소리가 되는 경우에만 쓸 수 있습니다. ‘바다’와 ‘물’이 합쳐지면 [바단물]이 됩니다. ‘ㄴ’이 덧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닷물’로 적는 것입니다. ‘초’와 ‘불’이 합쳐지면 [초뿔]이 됩니다. 뒷말이 된소리로 바뀐 것이지요. 그래서 ‘촛불’로 적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이시옷을 정확하게 적으려면 표준발음을 잘 익혀 둬야 합니다. 같은 ‘말’로 끝나는 단어라 하더라도 ‘노랫말, 존댓말’에는 사이시옷을 쓰고 ‘머리말, 인사말’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까닭은 각각의 표준발음이 [노랜말, 존댄말], [머리말, 인사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뒤에 오는 명사가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잇소리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와 ‘쪽’이 합쳐지면 [위쪽]이 됩니다. 발음의 변화가 없습니다. [족]이 [쪽]으로 바뀐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냥 ‘위쪽’으로 적어야 합니다. ‘아래’와 ‘층’이 합쳐지면 [아래층]이 됩니다. 이때도 발음의 변화가 없으므로 그냥 ‘아래층’으로 적는 것이 맞습니다.
넷째, 사잇소리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앞말에 받침이 없는 경우에만 사이시옷을 씁니다. ‘바닷가’나 ‘시냇가’에 대비해 ‘물가’를 ‘*?가’로 적지 않는 것은 앞말에 받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더라도 합성어 전체가 한자어이거나 외래어가 섞여 있을 때에는 사이시옷을 적을 수 없습니다. ‘소수(小數)’와 ‘점(點)’이 합쳐지면 [소수쩜]이 되니까 ‘*소숫점’으로 적을 만하지만, 전체가 한자어이므로 사이시옷을 적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수점’이 맞습니다. 전체가 한자어가 아닌 ‘꼭짓점(--點)’에서는 사이시옷을 적는 것과 대비가 됩니다. ‘핑크(pink)’와 ‘빛’이 합쳐지면 [핑크?]이 되니까 ‘*핑?빛’으로 적을만하지만, ‘핑크’가 외래어이므로 사이시옷을 적을 수 없습 니다.
끝으로 한자어로만 이루어진 말 중에서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등 2음절로 된 6개 단어에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사이시옷을 적습니다. 말 그대로 이 6개만 예외이므로, 셋방 중에서도 ‘월세로 사는 방’을 가리킬 때는 ‘월세방(月貰房)’으로 적어야지 ‘*월셋방’으로 적으면 안 됩니다.
이제 ‘장마비’와 ‘장맛비’ 중 무엇이 맞는지 알아볼까요? 이 말은 명사 ‘장마’와 ‘비’가 합쳐진 말이고, [장마삐]로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장마’와 ‘비’ 모두 고유어입니다. 따라서 ‘장맛비’가 바른 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