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모르고 살았을 세상이 있다. ‘전업주부의 세상’ 혹은 ‘여유 넘치는 자발적 백수의 세상’ 정도로 설명 할 수 있는, 웬만한 직장인들은 퇴직하기 전에는 접해 보기 어려운 세계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자연스러워진 근교 나들이에 나섰다가 녹초가 돼 돌아오길 반복하는 주말들을 보내면서 그 세상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휴직 당시 그 세상에 도취된 나머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집 밖을 잘 나서지 않았다. 눈에 불을 켜고 집을 나서는 요즘과 달리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대부분 집에서 쉬면서 주간청소를 한다거나 이불 빨래를 하면서 다음 한 주를 위한 이런저런 정비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답답하면 동네 공원에서 산책 한 번 하는 정도였을 뿐, 멀리 나가지는 않았다. 일상이 ‘토일토일토토일’인 상황에서 너도 나도 다 쉬는 주말에 우리까지 가세할 필요가 있느냐, 여유 있을 때 가면 되지, 하는 생각이 뼛속까지 밴 터였다.
가족여행은 당연히 100% 주중에 이뤄졌다. 웬만해선 길 막힐 일 없고, 줄 설 필요가 없다. 어디 이뿐인가. 놀이공원이나 휴양지의 박물관, 갤러리, 수영장 같은 부대시설들은 우리 가족이 전세를 낸 것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숙박비는 대단히 저렴했고, 한가한 가운데 손님을 맞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싱글벙글 친절했다. 비수기 주중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머지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던 휴직 초기 2 개월 동안은 솔직히 여행을 다닌 기억밖에 없다. ‘우리에게 언제 또 이런 시간들이 오겠느냐.’며 우리 부부는 서로 여행을 부추겼다. 그만큼 토일토일토토일의 세상은 달콤한 신세계였다.
여행뿐만이 아니었다. 장보러 마트나 시장에 가도, 백화점이나 아울렛으로 쇼핑을 가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외식을 나가도 웬만해선 주말에 가는 일은 없었다. 철저하게 주중 낮 시간에 이뤄졌다. 거칠 것 없이 유모차를 밀고 다닐 수 있었고, 어딜 가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에 대한 배려심 충만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주말 장사가 반이라는 동네 백화점의 식당가는 또 어떤가. 대대적인 할인에 나서는 바람에 주말 가격의 반값이면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보내놓고 한숨 돌린 아줌마들로 북적대긴 했지만 주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흘렀다. 주말에 일하는 직원들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 으며, 두 시간이 넘도록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고 보니 딴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해외 휴양지로 휴가를 가지 않고도 여유 넘치고 따뜻한 일상을 누리면서 ‘전업주부’의 삶을 잠시 꿈꿔보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나 나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육아휴직 아빠. 영원히 머물고 싶지만 언젠가는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내면의 부조화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키웠다. ‘모든 사람이 같은 날에 일하고, 같은 날에 휴가를 떠나는 게 문제야.’, ‘이걸 좀 분산시킬 수 있다면 이용하는 우리도, 수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도 더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유럽 어느 나라들처럼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없다면 휴일을 분산시키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어.’
복직 10개월, 지금은 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조금만 더 일찍 퇴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가족과 몇 시간이라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주말에 눈에 불을 켜고 밖으로 돌 필요가 없을 텐데….’ 아내와 아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집에 들어서면서 또 생각한다. ‘비누향기 날리며 저녁 식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웃음꽃 피울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까.’ 그 세상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