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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소믈리에현금이 사라질 수 있을까?
권기대 나라경제 기자 2016년 04월호

결국 화폐도 극과 극으로 나뉠 가능성이 커졌다. 화폐의 기능 중 교환의 매개기능을 실현하는 지급수단으로서의 구체적 실물을 대표하는 동전의 경우는 빠른 퇴장이 불가피하지만, 가치의 척도기능과 가치의 저장기능이 비교적 용이한 지폐의 경우는 다른 비현금 지급결제수단과 비교해 아직까지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문인 임춘이 지은 공방전(孔方傳)은 엽전을 의인화한 가전체 소설로 돈의 제조 및 활용 과정을 역사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과 연결해 당시의 경제 상황을 풍자했다. 가전체 소설의 특징인 계세징인(戒世懲人)과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목적으로 돈을 사람에 비유해 쓴 우화로, 여기서 등장하는 공방은 밖은 둥글고 안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 엽전을 뜻한다. 지금은 공방처럼 네모 난 구멍이 있는 엽전은 아니지만 동전과 지폐가 교환의 매개수단 혹은 재화나 서비스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돈은 시대별·역사별로 그 모양과 형태는 사회의 필요성이나 제조기술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지만 교환의 매개수단, 지불수단으로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다.

 

‘동전 없는 사회’ 눈앞에 둔 대한민국, 1원과 5원은 발행 중단   

 

그런데 영원불변할 것 같았던 현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신용카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현금이 21세기 들어선 인터넷 뱅킹이나 스마트폰 결제 등이 일반화되면서 그 사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선진국에서는 현금 사용을 줄이는 일이 중요한 경제 정책으로 떠오를 정도이며 이미 몇몇 선진국에선 현금없는 사회로 진입한 모습이다.  

 

현금거래 비중이 낮은 대표적인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은 국내총생산(GDP) 중 현금이 유통되는 비중이 2%에 불과하다. 대중교 통을 이용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현금을 이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성당·교회에선 카드리더기를 설치해 헌금이 가능할 정도다. 덴마크에서도 모든 결제의 85%가 신용카드로 이뤄지고 있다. 이 밖에도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등은 일정금액 이상 거래 시 현금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처럼 비현금 결제가 대중화되면서 머지않아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때마침 지난 1월 12일 한국은행도 「중장기 지급결제업무 추진 전략(지급결제 vision 2020)」을 발표하면서 선진국의 ‘현금 없는 사회’ 모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동전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동전 없는 사회 (coinless society)’ 도입 검토를 시사했다.  

 

그러나 굳이 한국은행 발표가 아니어도 사실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이 저조한 1원과 5원은 1992년 발행이 중단됐다. 나머지 동전들도 사용하기 불편하고 가지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점점 사용이 축소되고 있다. 어느 순간 바지 주머니에서 짤랑대던 동전소리는 사라졌으며 지갑에는 지폐 대신 신용카드가 채워져 있을 뿐이다. 계산대에서 잔돈을 주고받거나 두툼한 월급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현금은 익명성을 가지고 있어 지하경제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었는데 현금이 사라지면 모든 금융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고 투명한 과세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현금은 동전과 지폐를 발행하고 관리·폐기하는 데 상당한 규모의 재정적 비용이 들어가는데 현금 사용을 줄일수록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전국 은행을 돌며 6개월 동안 수집한 10원짜리 구형 동전 600만개(24t)를 녹여 주화를 훼손한 사건은 현금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형 10원짜리 동전은 구리(65%)와 아연(35%)의 합금으로 제조됐는데 화폐로서의 가치는 10원이지만 녹여서 금속으로 팔면 2.5배에 달하는 25원가량의 가치가 있다. 이를 악용해 동전이 아닌 동괴나 수도계량기 부품을 만들어 되팔아 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 현재 10원의 경우엔 화폐 액면가와 제조비용 차익에서 발생하는 ‘시뇨리지 효과’가 마이너스로 나타나 제조할수록 손해다. 결국 이러한 범죄가 또 나타날 확률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현금을 대신할 비현금 지급결제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신용카드, 핀테크, 생체정보 등이 IT의 발달을 등에 업고 안전성과 편리성을 확보해가며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 동전이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5만원권 예비적 용도뿐 아니라 거래적 용도로도 활발히 사용  

 

렇다면 정말 현금 없는 사회가 일상생활 전반에서 나타날 수 있을까. 지난 3월 16일 한국은행이 조사한 「2015년도 경제주체별 화폐사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가구(99.7%)가 거래용 현금으로 평균 11만6천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용 목적으로 현금을 가지고 있는 가구도 27%에 달했으며 평균 69만3천원을 가지고 있었다. 거래용 현금의 경우 5만원권(46.9%)과 만원권(45.1%)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예비용 현금은 5만원권(80.7%)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5만원권은 편의성에 대한 만족도가 가계 및 기업 모두 높게 나타나 예비적 용도뿐 아니라 거래적 용도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노년층의 현금 선호는 현금 보유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50대는 평균 40만원, 60대는 39만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으나 40대는 26만원, 30대 19만원, 20대 14만원으로 연령이 낮아질수록 현금보유는 줄어들었다. 월소득 대비 현금 보유액의 비중도 60대는 16.4%, 50대는 11.8%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20대와 30대는 월소득 대비 6.6%만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현금 지출액도 50대 이상은 압도적으로 높아 매달 105만원을 지출하고 60대는 매달 71만원을 사용하고 있다. 현금 지출액 비중으로 살펴보면 50대는 42.3%, 60대는 42.9%로 40%를 상회한 반면 50대 이하는 40%를 넘지 못했다.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결제가 보편화된 시대에도 노년층에게는 현금 선호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화 현상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결국 화폐도 극과 극으로 나뉠 가능성이 커졌다. 화폐의 기능 중 교환의 매개기능을 실현하는 지급수단으로서의 구체적 실물을 대표하는 동전의 경우는 빠른 퇴장이 불가피하지만, 가치의 척도기능과 가치의 저장기능이 비교적 용이한 지폐의 경우는 다른 비현금 지급결제수단과 비교해 아직까지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이어온 경기 불황과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개인용 금고의 판매량이 증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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