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에 ‘차별(discrimination)’이 존재하는 걸까? 물론 현상적으로 보면 남자는 여자보다 월급을 많이 받고 있고, 대학 졸업자는 고졸자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남자를 혹은 대졸자를 불공정하게 우대하기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우수하고, 그래서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능력이나 생산성의 차이를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백인 전과자보다도 대우 못 받는 흑인이 문제를 다루는 전통적인 방식은 회귀분석이다. 임금에 혹은 취업 확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여러 요인을 통제한 상태에서 남자 혹은 대졸자인지 여부가 유의한 플러스값을 나타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많은 통제변수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대졸자가 고졸자에 비해 보다 성실하다거나 혹은 외모가 덜 매력적이다거나 등과 같은, 노동시장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도저히 숫자변수로 측정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장실험(field experiment)들은 매우 흥미로운 시도다. 지금까지의 연구 중에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취업상 차별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대표적 연구로 페이저(Pager), 웨스턴(Western), 보니코프스키(Bonikowski)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보자. 이들은 미국 뉴욕시의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흑인이나 중남미 근로자가 백인 근로자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9개월에 걸쳐 340여개의 일자리 공고를 낸 회사에 위장 지원자들을 보냈다. 중요한 것은 인종을 제외한 다른 특성들이 유사한 지원자들을 같은 회사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화술이나 사람 대하는 스타일 그리고 외모의 매력도가 유사한 사람들로 팀을 만들고, 이들에게 학력수준이나 직장경력 그리고 거주지역이 유사한 것으로 작성된 가짜 이력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실제 면접에서 지원자들이 유사한 행동을 하도록 사전에 훈련도 시키고, 면접 당일 비슷한 옷을 입도록 하고, 면접 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위장 지원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 끝에 실시된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흑인 지원자들이 2차 면접 통보(callback)를 받았거나 직장 제의를 받은 경우는 15.2%로, 백인 지원자들의 31.0%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중남미 지원자들의 경우는 25.1%였다. 전과 경력이 없는 흑인이나 중남미 지원자들은 전과가 있는 백인 지원자에 비해서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이 얼마만큼 강고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에서도 2% 정도 부족함을 느낀다. 인종만 다를 뿐 다른 특성들이 모두 유사한 근로자를 선발해서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훈련까지 시켜가면서 동일한 회사에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회사의 면접관이 인종 외에 다른 요인들은 동일하다고 판단할지는 의문이다. 면접관의 눈에 비치는 지원자들의 다양한 특성을 유사하게 맞춘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수 있다. 또한 위장 지원자들은 왜 이러한 실험을 하는지 연구 목적을 알고 있고, 따라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의도된 행동을 할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흑인 지원자는 실험에서도 그러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면접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분석 결과가 왜곡될 수 있는 것이다. 흑인이 숙련을 향상하면 백인과의 차별이 해소될까?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버트런드(Bertrand)와 멀레이너선(Mullainathan)의 연구는 무척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들은 보스톤과 시카고 신문에 공고된 1,300여개 구인광고에 5천여장에 달하는 가짜 이력서를 보냈다. 한 회사에 보통 4장의 이력서를 보냈는데, 2장은 학력 수준과 경력이 높은 지원자의 이력서를 그리고 다른 2장은 그렇지 않은 낮은 학력과 경력 수준의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 에밀리(Emily)와 그레그(Greg)처럼 백인인 것으로 들리는 이름과 라키샤(Lakisha)나 자말(Jamal)처럼 흑인인 것으로 들리는 가짜 이름을 섞어서 적었다. 다른 특성들은 무작위적이고 단지 이름만 백인일 것으로 연상되는 이력서와 흑인일 것으로 연상되는 이력서에 미국 회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 노동시장에 흑인에 대한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연구 결과는 잘 보여준다. 백인 이름의 이력서는 흑인 이름의 이력서에 비해 50%가량 면접 통보를 더 받았다. 학력과 경력이 높다고 기록된 양질의 이력서일수록 백인 이름과 흑인 이름 간 면접통보비율의 차이는 오히려 더 컸다. 흑인이 숙련을 향상한다고 해서 백인과의 차별이 해소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장실험을 하려면 대학위원회에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대상이 되는 회사 이름이나 정보는 철저하게 비공개돼야 하는 등 몇 가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허가를 받은 연구는 자유롭게 실험을 진행할 수 있고, 분석된 결과는 공개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실험을 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에 가짜 입사지원서가 수십여장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일은 한 연구자가 스펙이 좋으면 실제 취업이 잘되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실험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기업 공채기간 동안 191개 기업을 대상으로 1,900장의 허위 이력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당시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언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룬 것 같다. 제목부터 ‘대학교수 소행’, ‘연구욕심이 빚은 가짜원서 소동’ 등으로 표현하고 있고,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현장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자들에게 단단히 각인시켜 준 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여성에 대해서, 지방대학 졸업자에 대해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 진정한 의미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지. 더불어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가능한 현장실험이 왜 한국에서는 사법적 처벌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연구자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석을 시도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토론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