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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그래도 때리는 것보단 맞는 게 낫다
정민승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2016년 06월호


마감으로 바쁜 오후 시간에 아내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한 두 개가 아니다. 모두 사진이었다.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휴대폰이 붕붕거리는 바람에 결국 일을 멈추고 카톡 창을 열었다.


‘무슨, 사진을 이렇게 찍었나….’ 앵글도 그렇고, 구도도 그렇고 엄마가 찍은 아들내미 사진치고는 너무 성의 없다 싶었다. ‘눈 감고 찍어도 이보다 잘 찍겠구먼….’ 표정은 또 어찌나 일그러져 있던지, 아들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범죄 용의자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그 아래로 메시지가 또 날아들었다. “속상해 죽겠어. 같은 어린이집 한 살 어린 동생이 달려들어 꼬집었대.”


과연 찡그린 표정의 사진을 확대하니 입 주변과 턱 아래, 볼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손톱 같은 날카로운 것에 할퀴어 생긴 듯했다. 그렇지만 소독하고 제대로 관리해 주면 흉터까지 남을 것 같진 않았다.왕성하게 성장할 때라 상처는 금방 나을 테고, 어린아이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 다른 애들 때리고 다니는 것보단 낫다.’


아내의 짧은 문장은 계속 날아들었다. “정말 여기 못 보내겠어.”,“이번엔 또 다른 애야.”, “이 지경이 되도록 선생님들은 뭐 한 거야.”,“CCTV 한번 보여 달라고 해야겠어.”…. 어린이집에 대한 불만과 가해 아이의 부모에 대한 원망 등등 아내의 화는 한참 동안 잦아들 줄을 몰랐다. 마감 시간 때문에 정신은 혼미한데 계속 날아드는 아내의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한마디 맞받아치고도 싶었다. ‘여기 안 보내면 자기가 일 그만두고 들어앉아 애 볼 거야?’, ‘CCTV 보여 달라고 해서 좋아질 게 뭐가 있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그랬다는데 그 부모한테 뭐라고 이야기할 건데?’.


하지만 차마 이런 생각들을 아내에게 전송할 수는 없었다. 속상해하는 아내 모습 위로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이랑 골목에서 싸우다 꼬집혀 집에 들어가면 애달아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 됐다. 세상 어느 엄마가 자식이 다쳐서 집에 왔는데 아무렇지 않을까. 그 속상함을 쏟아낼 제일 만만한 사람이 남편일 텐데…. 대꾸를 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은 전혀 없었다. 아내와의 카톡 창 알림을 꺼놓는 방법으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몇 시간 뒤, 집에 들어가니 아들은 잠들어 있고 아내는 아들 얼굴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아내는 ‘가장’이 집에 들어온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아들이 그렇게 당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 하는 묵언 시위였다. “동생들한테 이렇게 꼬집혔단 말이야? 뭐, 때리고 다니는 거보다 낫지. 허허허허.”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쏘아볼 뿐 아무런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침묵 뒤 아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00(아들), 태권도 학원 알아봐야겠어.” 이 말은 곧 아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겠다는 뜻일 터. 세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에게 벌써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아들에게 물었다. “어제 친구한테 꼬집혔는데 어땠어요?” “싫었어요. 아팠어요.” - “또 친구들이 그러면 어떡하지?”-“안 돼! 나쁜 행동이야, 할 거예요.”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러면‘나쁜 행동이야.’ 하면서 말릴 거예요.” 전날 엄마한테 교육을 받았는지 아들은 온갖 손짓을 섞어가며 마구 지껄였다. 아들의 이 다짐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으나, 이 정도면 아들은 얻은 게 더 많다고 봐야 된다. 때린 것보다 맞은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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