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남미 국가 최고의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카공화국 경제는 여전히 구조적 불안요소를 갖고 있다. 만성적 전력난과 민간 전력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보조금은 경제의 만성통증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또한 경제적 기득권이 오랫동안 독과점으로 유지됨으로써 적극적인 산업정책 및 신산업 진출, 창업 등 경제적 활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5월 16일 저녁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 뭉개진 홍시 같은 카리브해의 노을이 옅어지고 어둠은 짙어졌다. 집권 도미니카해방당(PLD)의 황금색 별 문양과 보라색 깃발이 어둠보다 빨리 링컨 에비뉴를 덮었다. 득표율 60%가 넘는 대승. 습기를 잔뜩 품은 도시의 공기는 메렝게 리듬과 군중의 환호로 더욱 뜨거웠다.
2년 연속 7%대 성장, 올해도 5% 이상 예상…빈부격차는 심각 교육, 경제, 일자리, 빈곤층 지원, 치안 및 부패척결. 개헌을 통해 연임까지 성공한 메디나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자 집권 1기 성과로 내세운 키워드다. 한마디로 ‘민생’이다. 최근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빈부격차는 심각하다. 3분의 1 이상이 여전히 빈곤층이다. 민생은 이 나라에서 현실감 있는 정치인에게 우선순위가 아닌 절대적 이슈다.
현 대통령은 민생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교육’에 뒀다. 최초 집권공약으로 GDP 4% 교육투자, 8시간 수업시스템 도입을 내세웠다. 첫 임기 동안 수백 개의 신규 공립학교를 개설하고 1만개 이상의 교실을 증축했다. 공립학교 교사급여도 약 50% 인상됐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최상위백인계 가족기업들이 경제적 기득권을 독과점하고 있다.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다수 인종은 흑백혼혈인 물라토(mulatto)다. 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은 자력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첫 임기의 객관적 성적표라 할 수 있는 경제지표는 시운(時運)과 정치적 역량이 뒷받침돼 특별한 논란 없이 합격점을 받았다. 집권 초부터 4%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과 ‘빈곤층 지원’에 역량을 집중했다. 임기 중 최대 교역국인 미국의 경기호황으로 관광산업, 건설업 등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다수 중남미 국가가 원자재가격 하락과 중국발 수요부진, 정치 불안으로 경기침체에 빠진 것과 대조적으로 최근 2년 동안 7%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메디나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은 치안과 부정부패 척결 이슈, 특히 집권당 내부관계 및 제1야당과의 연정에서 두드러지게 발휘됐다. 아이티와의 갈등과 일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치안강화 명분으로 불법이민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밀어붙였다. 2012년 취임 직후 공공지출 효율성 향상을 위한 법령을 발표, 공공자금의 투명성 향상과 공무원 부정에 대한 엄중처벌을 천명했다. 공용카드 사용 및 공용차량 구입통제 강화, 휴대전화 사용 및 차량유지비 지출억제, 공공예산의 리셉션·오찬·선물경비 지출금지 등을 명시하고 위반 시 해고 및 법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연임에 성공한 메디나 대통령은 정치적 안정과 경기호조라는 양 날개를 달고 집권 2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자산인 국민적 지지와 제1야당의 협조를 확보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경제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7%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올해도 최소 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2015년 기준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경상수지 적자 규모와 안정적인 물가상승률(2.3%)까지 낙관적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렇다면 오는 8월 16일 집권 2기를 시작하는 메디나 정부는 도미니카공화국에 유례없는 도약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중장기 산업정책 여전히 불투명…韓 경제발전공유사업에 적극적 최근 중남미 국가 최고의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카공화국 경제는 구조적 불안요소를 갖고 있다. 만성적 전력난과 민간 전력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보조금은 경제의 만성통증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정부는 전기 사용자에게 전기료를 인상하지 않기 위해 전력생산업체와 배전업체에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보조금 부담으로 세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경제개발에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정부 프로젝트 대부분을 여전히 국제기구 원조나 차관 등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다.
매년 막대한 예산을 전력 부문에 쏟아붓고 있지만 보조금 규모가 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보조금 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전력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이미 카리브지역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전기료가 부담이다. 전력손실률과 도전(盜電), 전기료 미납자가 많아 전기료 인상이 사용자 불만과 미납자 증가만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브라질 부정부패 스캔들 여파로 가장 큰 뿐따까딸리나 발전소 건설·운영 프로젝트까지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결국 중산층 이상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증세가 구조적 문제 해결의 현실적 방안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최근 경기호조로 증세에 따른 부담이 적고 대선과 총선, 지자체장 선거가 모두 동시에 끝나 정치적 부담도 가장 적은 상황이다. 따라서 올 하반기부터 증세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증세 이후다. 정치적 리더십과 경기호조 여건이 지속된다면 증세 이후 전력난 등 구조적 악순환 해결에 의미 있는 진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장기 산업정책과 경쟁력 강화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주요 수출품은 사탕수수·커피원두·담배·카카오·페로니켈 등 농산품·원자재에 집중돼 있다. 수출대상국도 인근 미국과 최빈국 아이티에 절반가량 몰려 있어 미국 경기에 따라 경제 여건이 급변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주요 산업인 관광 부문도 미국 경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향후 개방에 나설 쿠바와의 경쟁도 변수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자유무역지대의 주요 수출품도 아직까지 봉제의류·전기제품·보석류·담배·신발류 등이 대다수다. 전력생산을 위한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공산품 수요 대부분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진문화 습득에 매우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장점에도 불구, 경제적 기득권이 오랫동안 독과점으로 유지됨으로써 적극적인 산업정책 및 신산업 진출, 창업 등 경제적 활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SICA(중미통합체제) 정회원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와 FTA 체결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캐나다 등 주요국과의 FTA협상이 상대적으로 매우 지지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미니카공화국 경제가 주변 개발도상국을 뛰어넘는 도약을 하기 위해선 경제적 기득권을 뛰어넘는 정치적 리더십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목적지에 이르기 전, 갈 길은 늘 멀리 느껴진다. 메디나 정부의 교육 부문에 대한 집중투자가 멀긴 하지만 분명히 획기적 도약의 목적지로 이끌 수도 있다. 공립학교 증설뿐 아니라 전문기술학교를 통해 60만명 이상의 기술자를 배출하고 고등교육과학기술부가 2만5천명의 장학생을 육성하는 정책은 희망적이다. KAIST를 벤치마킹해 고등과학기술 교육기관을 설립, 육성하려는 움직임도 의미가 크다. 많은 도미니카공화국 국민과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고 벤치마킹하고 싶어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공유사업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미래 도약에 우리의 발전 경험 공유가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