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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한심한 혹은 터프한
정민승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2016년 07월호


이 아빠는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워준 적이 거의 없다. 이제 35개월 된 아들은 생후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도 아빠가 아들을 일으켜 세워준 기억은 생각해 내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다시 일어나 곧잘 걷기도 했지만,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서서 걷도록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내버려 뒀다. 그 덕분인지 당시 두세 발짝에 불과하던 아들의 걸음 실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걸음을 내디딜 수준에 도달했다. 자연스럽게 유모차를 이용하는 횟수와 시간도 급격히 줄었다. 이후 걸음걸이는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노련해져 갔지만, 걷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져 넘어지는 일은 계속됐다. 그때에도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툴툴 털고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파서 울기도 했고, 울지는 않더라도 아빠가 일으켜 세워주길 바라는 신호를 눈물 고인 두 눈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손은 내밀지 않았다. 대신 아빠는 아들이 빨리 일어나도록 거짓말을 했다. “저기, 뱀! 뱀!” 바람직한 방법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말 한마디에 감겼던 용수철이 풀리듯 일어나는 아들의 모습에 같은 거짓말은 상당기간 반복됐다.


어린아이가 넘어져도 보호자는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이런 장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더러는 ‘이 아저씨가 진정 이 아이의 아버지인가.’하는, 고약한 계부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들이 두 돌을 갓 넘겼을 즈음 아들이랑 둘이서 찾은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간을 잘못 알고 1시간이나 일찍 찾은 덕에 우리 부자는 여유가 넘쳤다. 마당을 뛰어다니며 분수대 구경도 하고 너른 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아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벤치에 앉은 아빠를 중심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던 아들은 상당한 거리까지 나가 뛰어다니다 신부(나이가 많다)의 친구들로 추정되는(아이 하나 둘은 키웠음 직한) ‘이모’들 앞에서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달리던 속도 탓에 멀찍이에서 봐도 좀 크게 넘어졌지만, 아들보다 더 놀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 이모들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주변을 수색했다. ‘이 아이의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는가.’ 동시에 일으켜 세울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 했다. ‘근처에 아이 부모가 있을 텐데…. 내가 일으켜 세워도되는가.’ 아들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허리를 반쯤 굽히다가도 근처에 아이 부모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주저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자 한 이모가 아들을 안아 세웠다. 머리도 한 번 쓰다듬었다. 아들도 울음을 뚝 그쳤다. 이후 예식홀 입구에서 만난 그 이모들은 ‘아까 그 아이’와 같이 있는 아저씨를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이 강렬했던 탓일까.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어이없어 하던 이모들의 눈빛이 한동안 눈앞에 선했다. 카시트에 앉아 곯아떨어진 아들을 룸미러로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육아를 하는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모두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잠깐의 낮잠으로 다시 충전된 덕분인지, 계속 넘어지면서 단련된 덕분인지 아들은 집에 도착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달리다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아들을 보면서 복직 후 바쁜 일상으로 잊고 지내던 나름의 육아목표가 생각났다. 엄마 아빠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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