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사람에게 수확보다 큰 기쁨은 없다. 봄나물과 딸기, 쌈채소는 진작 수확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수확은 6월부터다. 밭둑 앵두나무에 앵두가 발갛게 익어 신호를 보낸다.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을 따기 시작했다. 완두콩이 익었고 마늘도 줄기가 말라가는 것을 보니 곧 뽑을 때가 됐다. 나는 따로 단호박을 한 포기 심어봤는데, 딱 한 개 열려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모종을 500원 주고 사서 2천~3천원짜리 하나를 겨우 수확한다고 셈을 하고 보니 잠시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커가는 것을 보는 게 참 기쁘다. 호박은 일주일 사이에 정말 놀랍게 큰다.
가장 큰 고민거리가 감자다. 함께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이 모여 두어 번 북주기를 했고, 그 뒤에도 거의 매주 김매기를 하는데도 풀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더 큰 골칫거리는 무당벌레다. 감자 이파리에 알을 낳아 애벌레가 이파리를 갉아먹는다. 손으로 일일이 애벌레를 잡아주지만 일주일 뒤에 가보면 다시 퍼져 있다. 목초액을 물에 타 뿌려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벌써 가뭄에 타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게 적지 않다. 벌레와 나눠먹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하다. 감자를 키우면서 또 한 번 땅심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퇴비를 많이 넣어 땅을 기름지게 해야 튼튼하게 자라 병충해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자연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거의 자라지 못하고 그냥 말라가는 키 작은 감자줄기를 뽑아버리고, 아무런 기대 없이 그 자리를 파보았더니 작은 계란만 한 감자가 두 알 나왔다. 올해 감자농사는 망쳤나 보다 생각한 건 착각이다. 씨감자 하나를 서너 조각으로 잘라 하나씩 심은 자리에서 4~5개씩만 수확해도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 캘 것인가? 우리 밭 옆 할머니네 감자줄기는 매우 무성하다. 우리 밭 감자줄기의 세 곱절은 되는 듯하다. 우리 밭 감자는 아직 제대로 여물지 않았으니 수확을 늦추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제때 수확을 못하고 장마철을 맞으면 곤란해진다. 질퍽한 땅에서 수확한 감자는 흙투성이가 돼버리기 십상이다. 너무 늦게 수확해도 감자에 수분이 많아져 상하게 된다고 오래 농사를 지으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각자 구획을 지어 농사를 짓는 밭엔 토마토가 여러 종류다. 대추토마토, 방울토마토는 흔히 보던 것인데, 한 회원의 밭에 열린 토마토는 모양이 이상하다. 줄기가 크게 자라지도 않은 데다 토마토가 가지 아래 부분에 모여 포도송이마냥 맺혀 있다. 방울토마토 모종이라고 사서 심은 것이라 한다. 파랗게 알이 굵어가는 것을 일주일 뒤에 가보니 빨갛게 익었고, 새들이 먼저 시식을 했다. 아이들이 앞다퉈 자기가 따겠다고 한다.
옛 어른들 말씀에 콩을 세 알씩 심는 뜻은 하나는 벌레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나머지 하나를 사람이 취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 밭에도 강낭콩을 한 구멍에 세 개씩 심었는데, 벌레가 먹지 않고 새가 먹지도 않아서 세 알 모두 싹을 틔워 자랐다. 그게 오히려 아쉽기도 하다. 올해도 새들과는 옥수수나 나눠 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