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호흡하는 미술관, 나가사키현 미술관
최우용 건축가 2016년 07월호


나가사키(長崎)는 규슈 서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작은 도시다. 나가사키는 바다로 열려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는데, 특히 인도양으로 향해 있는 지리적 특성상 쇄국의 빗장 속에서도 서양의 많은 배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 바다 그리고 항구는 나가사키란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는 커다란 부분이었으며, 그리하여 개항은 나가사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근대의 여명 속 제국주의 열강들은 일본에 문호개방을 요구했고 또 강제했다. 압도적 무력을 앞세운 서구세력에 의해 일본의 여러 항구도시들은 강제적으로 개항해야만 했는데, 그중 나가사키는 대표적 개항도시로 부상하게 됐다. 서구의 문물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나가사키는 새로운 문물 그리고 그 문물에 붙어서 같이 들어오는 새로운 문화로 인해 근대적 색채짙은 도시로 일신했다. 나가사키에 남아 있는 근대의 오래된 건축물들과 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많은 기념물들은 당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가사키는 이렇듯 개항과 신문물의 기념비적 장치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와 더불어 원폭의 상흔 또한 커다란 흉터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 원폭의 상흔과 흉터들로 인해 일본인들에게 전범(戰犯)으로서의 죄의식은 희석되고 피해자로서의 슬픔은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이제는 오래돼 버린 신문물의 이국적 향취와 더불어 죄의식과 피해의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서글픔 또한 느끼게 된다.


나가사키항 근처를 흐르는 작은 운하에 나가사키현 미술관이 놓여 있다.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이 미술관의 모토는 ‘호흡하는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호흡을 하면서 도시와 지역을 크게 활성화해 가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시점을 가진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고 미술관 팸플릿은 말하고 있다. 과연 이 미술관은 도시와 지역과 어떻게 호흡하고 있을까?


나가사키현 미술관은 미즈베노모리공원(水の森公園)과 인접한 공공부지에 여유롭게 앉혀 있다. 미술관은 미술관 부지를 관통하고 있는 운하를 끼고 양 옆에 두 동으로 분동돼 있는데, 2층에서 다리를 통해 연결돼 있다. 맨 위층인 지붕은 옥상정원으로 채워져 있다. 건축가는 부지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설계의 장애요소로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미술관을 운하 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지 아니하고 운하를 자연스레 품는 형상으로 미술관 건물을 놓았다.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운하 이쪽저쪽을 산책하게 된다. 더불어 나가사키현 미술관은 담으로 둘러싸인 장막 속 외로운 공간이 아니라 사방이 개방돼 있으며, 이와 맥을 같이해 미술관 내부는 자연스러운 자연광으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은 전시실과 관리를 위한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열려 있다. 입장료는 오직 전시실 이용을 위한 것이고 미술관 로비, 뮤지엄 숍, 인터넷 검색 공간, 현민 갤러리 그리고 실내 산책로와도 같은 빛의 회랑, 바람의 회랑, 다리의 회랑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옥상의 모든 공간마저 정원으로 빼곡히 꾸며져 있는데, 여기에 오르면 나가사키 시내와 앞바다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 운하 위 사뿐히 얹혀 있는 다리의 회랑 카페에 앉아 미술관과 운하
를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호흡하는 미술관이란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잠시 빠져본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