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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남구 기자의 도시농부미국 선녀벌레의 습격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2016년 08월호


6월부터 가지에 하얀 벌레가 달라붙어 곰팡이가 슨 것과 비슷한 게 눈에 띄었다. 밭 옆 산자락의 풀들은 훨씬 심했다. 점차 부추, 토마토, 호박, 옥수수를 비롯해 온갖 작물로 퍼져갔다. 장마가 시작되자 더욱 극성을 부렸다. 해가 덜 드는 곳에 심은 토마토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김매기에 부지런을 떨지 못한 가지는 더는 수확하지 못할 지경이 됐다. 길가에 심은 접시꽃이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상추 같은 쌈채소와 고추가 성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국 선녀벌레라고 했다. 노린재목에 속하는데, 성충과 유충이 줄기를 뒤덮고 즙을 빨아먹는다. 결국 말라죽게 한다. 원래 서식지는 미국이라 한다. 한국식물환경연구소 자료를 보니, 미군 수송 항공기에 의해 유럽으로 유입돼 1979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각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서울, 경기, 경남의 3개 시군에서 처음 확인됐다고 한다. 알로 월동하고 5~6월에 애벌레로 부화한 뒤 7~8월 성충이 되면 식물에 해를 입힌다. 아직 천적이 없어 해마다 번성하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올해도 곳곳에 피해 보고가 넘쳐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아주 잘못 지었다. 선녀라니.


방제법을 고민했다. 농약을 치지 않기로 했으니, 우선 목초액을 뿌려보기로 했다. 참나무로 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연기를 액화해 만든 초(酢)다. 아주 농도를 짙게 해서 분무기로 일삼아 뿌려봤다. 선녀벌레가 후두둑 튀며 흩어졌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 가보니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해 두 가지 방제법을 더 실험해보기로 했다. 일부엔 비눗물을 뿌렸고, 일부엔 난황유를 뿌렸다. 하루 지나 두 곳을 비교해보니, 비눗물을 뿌린 쪽이 선녀벌레가 확실히 적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갈변해 있었다. 실험을 해본 회원은 “강한 햇빛을 쬐는 가운데 세포막을 파괴하는 가성소다 때문에 작물 자체의 표피도 손상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난황유를 뿌린 곳은 선녀벌레 퇴치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작물엔 손상이 없었다. 난황유는 식용유에 계란 노른자를 넣고 믹서기로 혼합한 뒤 물에 희석한 것으로, 피부호흡을 하는 해충의 호흡기를 막아서 질식시킨다. 앞으로 난황유를 좀 더 뿌려보기로 했다. 난황유 대신 우유나 마요네즈를 물과 혼합해서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이건 나중에 써보기로 했다.


나는 애초 항복을 하자는 쪽이었다. 여름 장마철에 병해충이 번성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것도 자연의 균형이니, 받아들이자는 생각이었다. 부지런한 이들이 방제법을 이리저리 찾아 이 찜통더위에 애쓰는 걸 보면서 ‘내가 게으름을 그렇게 변명한 것 아닌가’반성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땅심이 좋아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고, 작물에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면 병충해를 훨씬 잘 견뎌낸다는 점이다. 올 가을에는 어떻게든 퇴비를 잔뜩 사서 밭에 넣자고, 사람들과 의미있는 눈인사를 건네고 밭을 등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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