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밥 잘 먹는 아이들이 부러운 때가 없었다. 때가 돼서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아들은 ‘밥’보다 단것을 먼저 찾는다. 이런 아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아들과 보내는 휴일 일과 중에서도 가장 고된 일이다. 외식 가서 만나는 남의 아이들은 숟가락, 포크, 젓가락으로 혼자서 잘도 먹는데 아들은 떠먹여 줘야 겨우 먹을 뿐, 엄마 아빠가 먹기를 원하는 음식을 스스로 제 입으로 가져가는 일은 거의 없다. 어린이집에서는 혼자서도 잘 먹고, 싹 비운 뒤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먹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지만, 이 아들이 그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어린이집 비결이 ‘경쟁’이라기에 집에서도 ‘경쟁식 식사’를 시도해 봤지만 허사다.
이 아빠는 자책하고 있다. 아들이 밥 대신 젤리나 초콜릿을 먼저 찾는 것은 아빠의 잘못된 육아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중에 아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빠는 소원해진 부자관계를 단시간에 회복하기 위해 아내 몰래 젤리와 사탕을 아들에게 상납했고, 아빠가 주도한 이 얄팍한 거래에 길들여진 아들은 식습관이 엉망이 됐다. 단것을 먹으면 밥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팍팍해진 부자관계의 윤활유였던 젤리와 초콜릿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대단히 힘들었다.
당연히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걸 먹으면 밥을 못 먹어~, 밥 먼저 먹으면 젤리 줄게. 응? 응!?” 이런 제안이 처음 한두 번은 먹혔을 뿐, 세 돌이 된 아들은 요즘 이런 유의 이야기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동원해 공포를 조장하고 그를 바탕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도 발견한다.
“00(아들)야, 이 젤리는 진짜 무서운 애들이야. 이게 먼저 뱃속으로 들어가잖아?? 그럼 00 배를 먼저 차지한 이 젤리들이 ‘밥! 너희들은 들어오지 마!’ 하면서 밥들을 공격해. 이렇게 해서 밥이 00 뱃속으로 못 들어가면 00는 뭐가 될까?” - “해골” - “그러니까 밥을 먼저 먹고 젤리는 뒤에 먹자아~.” - “네에~.” 아직은 아빠 이야기를 상당부분 믿고 따라주는 경향이 있지만 이 단순한 작전이 언제까지 먹힐지 알 수 없다
어쩌다 아들과의 협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며 우쭐해 하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 아빠에게 쏘아붙인다. “아빠가 아들을 망치네, 아빠가 아들을 망쳐~.” 배고프면 엄마 아빠를 졸라서라도 먹어야 하는 밥인데, 당연히 스스로 먹어야 할 밥인데, 그 밥을 먹이기 위해 조건을 걸고 보상을 제시하면서 아이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하면, ~해 줄게’ 식의 제안이 눈앞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손해일 것 같긴 하다. 아내의 지적이 아빠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보상을 내거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데까지 이르자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아들 첫돌 즈음 시작해 1년 동안 이어진 육아휴직에서 간절하게 바라던 게 몇 가지 있었다. 아들이 걸을 수 있었으면, 똥오줌도 가렸으면,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이유식도 뗐으면…. 이 정도만 되면 서너 명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하면 지금의 아들은 당시 이 아빠가 그토록 바라던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재잘재잘 말도 하고 똥오줌도 거의 완벽하게 가린다. 매운 것만 제외하면 아빠랑 식탁을 공유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을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은 안기기보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걸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키우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아들이 커갈수록 이 아빠의 부족함은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