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 료타로 기념관(司馬遼太郞 記念館)으로 향한다. 이 기념관은 기념의 대상인 소설가 시바 료타로와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 오사카 출신의 걸출한 두 문화 텍스트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에 흥미롭다.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기념관 정문을 지나 기념관 내부로 접근한다. 간결하고 명쾌한 동선이 돋보인다. 정성껏 조성된 접근로를 따라 기념관의 진입로에 들어선다. 완만하게 곡선으로 돌아가는 반(半)외부 공간인 진입로는 정원으로 시야가 열려 있다. 정원을 감상하며 조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기념의 대상으로 접근하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이 진입 동선에 건축가는 절반의 힘을 쏟아 부은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기념관 내부로 들어선다. 물리적으로 확실히 작은 평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건축가 안도 타다오 특유의 단순한 형태와 과감한 공간 연출이 인상적이다. 세 개의 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공간이 기념관의 중심 공간을 이루고 있다. 협소한 평면에서 세 개 층을 관통하는 공간을 만들었기에 2차원적 평면의 절대면적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3차원적 공간의 양감은 그 손실된 평면 면적 몇 배 이상의 팽창 효과를 갖게 된다. 이 ‘펑’하는 소리를 내지르는 듯한 공간에서 건축가가 쏟아 부은 나머지 절반의 힘을 보게 된다. 이 ‘펑’ 튀겨진 공간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모든 벽면을 빈틈없이 매우고 있는 서가와 그 책장들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장서들이다. 이 모든 책들이 작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만들어준 훌륭한 거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름이 양분 뿐 아니라 일정량의 독소 또한 갖고 있듯이, 저 많은 책들이 료타로의 편향된 역사관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일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시바 료타로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료마가 간다」는 1966년 탈고한 역사소설이다. 소설은 메이지 유신의 주변인물로 여겨졌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메이지 유신의 역사적 주연과 영웅의 위치로 이동시켰으며, 이 인물을 통해 일본 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그리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언덕 위의 구름」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메이지의 평균적 인간’인 3인의 이야기를 통해 러일전쟁의 당위성을 강변하고 열강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승리를 찬양하고 있다. 이 시기에 쓰였던 소설들에 녹아 있는 작가의 근본적인 역사관과 목표의식은 동아시아 역사를 편의적으로 해석해 찬란했던 일본의 ‘메이지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80~1990년대 사회 발전의 극심한 정체로 의기소침해진 일본 국민들에게 진취적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그의 소설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슬픔과 좌절에 빠진 자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야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그것을 위해 명백한 침략전쟁을 교묘한 방법으로 정당화하고 주변 이웃 나라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는 것은 기만적이고 저열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그의 역사관이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같은 일본 극우 세력의 이론과 실천에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의 역사관이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종 한 해 전인 1995년,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사과를 언급했다고 한다. 비록 다음 해에 유명을 달리한 이유로 사과에 대한 구체적 실천과 행동을 보여 주지는 못했으나, 그가 언급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그가 소설 속에서 보여준 편향된 역사관에 대한 반성은 아니었을까? 그의 죽음으로 후속작을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여기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바 료타로 기념관에서 일본 국민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역사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