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슈 북동쪽 끝 아오모리(靑森)에서 홋카이도 남서쪽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를 가기 위해 ‘슈퍼 하쿠토’라는 기차로 갈아탔다. 기차는 곧 53.85km에 달하는 해저 터널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1988년 3월 개통된 세이칸(靑函) 해저 터널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 세계 최장 터널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거대한 터널을 뚫기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쿄돔의 5배가 넘는 흙과 돌을 파냈고 1.5배에 가까운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34명의 순직자가 발생했는데 혼슈와 홋카이도를 해로가 아닌 육로로 잇기 위한 일본의 지난한 공력과 희생이 눈물겹다. 이름도 모르고 인연도 없는 34명의 망자들이 평안한 영면 속에 있기를 바라는 동안 특급열차는 목적지인 하코다테 기차역에 도착했다.
일본에 있어 근대란 서양 열강에 대한 굴종과 굴욕의 역사였다. 그 시기 서양 제국주의에 침탈된 대부분의 동양 국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압도적 무력 앞에서 동양 늙은 왕조의 힘없는 나라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야 했고 뺏으면 뺏는대로 빼앗겨야 했다. ‘미일 화친조약’이란 기막히게 기만적인 이름 아래 하코다테항이 개항됐고 개항도시 하코다테에는 이국의 문물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하코다테 구시가지는 관광도시의 맵시를 보여주고 있다. 잘 정돈된 가로와 유적지 그리고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시설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개항과 더불어 들어온 것들은 비단 이국의 사람들만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까지 한 쌍으로 움직여 들어왔다.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조계지(주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가 형성됐고 그들의 생활에 익숙한 주거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또 그들이 믿는 종교 건축물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졌으며 이국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마시고 놀고먹고 할 수 있는 공간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맡길 수 있는 은행들도 세워졌다. 하코다테 구시가지에는 개항 당시의 이러한 건축물들이 박제된 시간처럼 군데군데 또렷이 박혀 있다.
백여년 전, 이방의 개척자들을 위해 지어졌던 이 많은 건축물들이 유적이 돼버린 지금, 당시 영국의 영사관도 러시아의 영사관도 이제는 그 이름 앞에 ‘舊(옛 구)’자를 붙여야 한다.
침략의 정치는 사라졌으나 종교의 믿음은 미약하나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영국 성공회 계열의 성 요하네 교회와 러시아 정교 계열의 하리스토 교회는 아직 믿음을 전하고 기도드리는 공간으로 유효한 듯하다. 하지만 믿음의 공간보다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더 부산한 것도 사실이다. 이 종교 건축물들은 이국의 낯선 건축물로 동양의 작은 도시에 생경한 장면으로 삽입돼 있다.
발걸음을 옮겨 하코다테항 근처로 향한다. 가는 길, 개항 당시에 엄청난 물산으로 넘쳐났을 가네모리 아카렌카(金森 赤レンガ) 창고군(群), 붉은 벽돌의 창고 건축물 단지를 본다. 과거 서구 열강들의 온갖 물산의 집합장소였던 창고들이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소매상품으로 넘쳐나고 있다. 창고와 상점은 죽이 잘 맞는다. 이 창고들은 물류라는 틀 안에서 용도를 변경하며 생을 유지하고 있다. 부박한 속도전의 사회에서 구식의 건축물이 살아남는 방법을 다시 상품경제의 틀 안에서 찾아낸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나는 하코다테산(函館山)에 오른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코다테 시가지의 풍광은 장쾌하다. 내 눈과 시가지 사이를 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에 끼여 있는 하코다테 시가지를 바라보며, 한 세기 반 전 개항 당시의 하코다테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