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글에 이런 게 있다. “일부러 심은 꽃은 피지를 않고, 무심히 꽂아 놓은 버들은 무성한 그늘을 드리우는구나(有意栽花 花不開, 無心揷柳 柳成蔭).”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비슷한 게 있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장마철을 거치며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풀을 보는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 날마다 밭에 가지는 못하고 그저 주말에나 한 번씩 들르는 사람들이라면 8월에 다들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고구마덩굴을 제외한 작물들은 무서운 속도로 에워싸는 풀에 다들 기가 팍 죽어 있다. 이런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고 주말 농사꾼들은 프로 농사꾼들이 흔히 기르지 않는 특별한 작물을 밭에 기르는지도 모른다. 수확량은 아무래도 좋고 단지 자라는 걸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작물이 있다.
갓끈동부가 그 한 예다. 올해도 갓끈동부가 오이덩굴 지줏대를 감아 올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갓끈동부는 동부콩 종류인데 꼬투리가 마치 갓끈처럼 아주 길다란 게 특징이다. 6~8월에 길이 40~60㎝의 꼬투리가 열리면 익기 전 연한 꼬투리를 따서 요리해 먹는다. 익으면 꼬투리의 갓끈 모양은 더 뚜렷해진다. 하지만 장엄한 꼬투리에 견주면 콩 수확량은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농사꾼들에게 점차 외면을 받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작두콩은 꼬투리가 작두의 날 모양으로 생겼다. 꼬투리 길이가 30㎝ 안팎이다. 콩알이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하니 보통 큰 게 아니다. 하지만 싹 틔우기가 어렵고 많이 열리지 않는 게 큰 흠이다. 올해 우리 밭에 한 회원이 집에서 공들여 싹을 틔운 뒤 모종 2개를 옮겨 심었다. 아쉽게도 간수를 제대로 못해 하나는 어린 줄기가 부러져 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그늘진 곳에 심었더니 영 자라지 못하고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다. 죄를 지은 기분이다.
아주까리는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해마다 밭둑에 자란다. 올해도 몇 개 싹이 올라 장마를 이겨내고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아주까리기름 바른 이가 지심(김)매던”이란 구절이 있다. 아주까리기름은 먹지는 못하고 동백기름처럼 머릿기름으로 썼다. 바지런한 사람들은 이파리를 따서 묵나물로 만들어 뒀다가 정월에 먹는다. 나도 아주 좋아한다.
이 밖에 염주와 목화가 우리 밭에서 자라고 있다. 염주는 한 회원 가족이 열매를 꿰어 염주 목걸이를 모두에게 만들어 주겠다고 재배하고 있다. 나는 염주를 처음 봤는데 언뜻 보면 율무와 매우 비슷해서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열매로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율무의 열매가 긴 타원형인 데 비해 염주는 구형이다. 또 염주엔 세로 홈이 없고 훨씬 단단하다고 한다.
목화는 꽃밭에 두 그루가 자란다. 하나는 재작년에 거둔 씨앗을 싹 틔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 회원의 가족이 마음을 담아 옮겨심은 것이다. 솜을 수확해 쓸 일이 없으니 목화는 그야말로 쓸모없는 작물이다. 그러나 그 꽃을 보려고 기른다. 작물의 꽃 가운데 목화꽃보다 아름다운 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조상들의 삶을 지탱해준 그 고마움을 아이들에게 자손대대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목화만큼은 해마다 꼭 기르고 싶다. “얘들아, 이게 바로 그 목화란다.” 이 말을 할 때면 가슴이 참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