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 메이지신궁(明治神宮)에서 시작되는 오모테산도(表參道) 대로는 세계 명품 브랜드들의 쇼케이스장으로 화려하다. 이 대로에 자리잡은 명품 브랜드 매장들은 전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물로도 화려한데, 네덜란드 건축그룹 MVRDV의 불가리 매장,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프라다 매장, 일본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오모테산도 힐스, 그리고 토요 이토의 토즈 매장과 기쇼 쿠로가와의 버버리 매장 등이 오모테산도의 큰길 좌우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무수한 명품들과 이 명품들을 갈구하는 사람들로 도쿄 한복판은 흥청이는데, 이 흥청이는 길 끝에 조용한 미술관이 놓여 있다. 이 미술관은 소비와 쾌락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신궁 앞 공간을 위로하듯 사색과 휴식의 공간으로 고요하다.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은 토부 철도사장 등을 역임한 네즈 가이치로(根津嘉一郞, 1860~1940년)가 수집한 고미술품 컬렉션을 보전·전시하기 위해 1941년 처음 개관했고, 2009년 건축가 쿠마 켄고의 설계를 거쳐 재개관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의 대부분은 한 사업가의 왕성한 수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집의 대상은 일본을 포함한 동양 고미술의 넓은 장르에 걸쳐 있다. 미술관의 전시관은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양예술에 관심이 짙게 배어있다.
고밀도의 도시공간 속에서 정원과 건축과 예술을 함께 통합하는 공간을 구상했다는 건축가의 변은, 미술관 건축이란 결과물로 판단하건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네즈미술관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는 장대한 지붕으로 건축의 큰 꼴을 결정했고 기타의 장식적 수사를 배제했다. 오모테산도 대로변에서 보이는 것은 미술관의 지붕뿐인데 그 지붕 아래는 빼곡히 심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미술관은 현란한 건축형태의 수사 없이 지붕의 양감과 그 지붕에 새겨진 잔잔한 기와무늬로만 건축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미술관의 지붕은 깊이 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처마를 이루며 처마 밑 반(半)외부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처마 밑 공간을 천천히 걸어가면 전시관 입구에 이르게 되고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면 정원으로 열린 거대한 유리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유리벽 너머에는 날카롭게 정돈된 일본 특유의 정원이 펼쳐져 있고, 그 정원 사이사이에는 소박하지만 정연한 비례로 반짝이는 일본의 다실이 놓여 있다.
네즈미술관은 오모테산도를 수놓은 자의식으로 가득한 형태과잉의 건축물들과는 다른 결로 다가온다. 그것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시설과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전시시설이란 건축용도의 근본적인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팔기 위해서는 돋보여야 하며, 돋보이기 위해서는 ‘튀어야’ 하는 것이 시각 중심적인 오늘날 소비사회의 속성이다. 그리하여 도쿄 한복판 금싸라기 땅 위에는 튀어야 버틸 수 있는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격변과 격절, 오욕과 영광이 교차했던 메이지시대를 천황이란 구심점으로 살아냈던 메이지 천황 부부. 그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메이지 신궁의 앞길은 반짝반짝 튀는 건축물들로 뒤덮여 있는데, 그 길의 번잡함은 신궁이란 공간과 겉돌며 따로따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 네즈미술관이란 존재는 더욱 소중해 보인다. 건축가의 바람대로 지붕과 유리벽으로 구성된 미술관의 단출한 형태와 공간은 번잡함으로 격리된 신궁의 공간을 위로하고 또 위무하며, 정원과 건축과 예술을 한데 엮어내며 도쿄 한복판 숨통으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