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올해의 예산규모가 드디어 400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도 많았고, 실질적인 의미도 크다고 생각된다. 예산은 한 해 동안의 나라살림을 표현하는 것이라 세금을 내는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예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12월까지 진행될 국회의 열띤 토의와 심의를 통해 최종예산안이 합리적으로 잘 결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예산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국가재원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기능이고, 둘째는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정부지출을 늘려경기를 살리는 기능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IMF, OECD 등 국제기구는 재정상황이 비교적 양호한 독일이나 한국에 대해 재정적자를 통해 정부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 예산안의 재정수지가 GDP의 -1.7%이기 때문에 내년 살림은 적자다. 그 결과 국가채무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1%에서 40.4%로 높아진다. 따라서 사실상 국가채무의 규모를 더 높이라는 요구인 IMF, OECD 등의 제언은 일반 국민이나 정치권이 나라빚을 상당히 싫어하는 한국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물론 올해 예산내역을 보면 최근 나빠진 경제상황을 고려해 일자리 창출, 경제활력 회복 분야의 예산이 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예산은 국제기구의 권고와는 달리 상당히 보수적으로 편성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에 비해 재정적자 폭이 줄었고, 이자비용을 뺀 기초재정수지는 거의 균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재정이 경제상황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IMF와 OECD의 주장이 갖는 의미는 재정정책적 관점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OECD와 같은 국제기구는 국세를 기반으로 하는 일반재정에다가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이른바 통합재정수지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재정기조를 평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아직 성숙하지 않아 국민연금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그 결과 통합재정수지가 OECD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적지만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통합재정수지를 봤을 때에는 OECD나 IMF 관점에서 한국정부가 팽창이 아닌 축소 기조로 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재정상황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국제기구의 이러한 판단은 단기적인 것이다. 국제기구의 관점에서는 한국의 국민연금이 재정 여력을 제공하는 추가적 재원이지만, 한국 재정당국의 관점에서는 국민연금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압박하는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초 발표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사학연금, 산재보험, 건강보험, 군인·공무원 연금 등 모든 사회보험들이 한국의 재정을 중장기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기만 다를 뿐 궁극적으로 고갈될 이러한 사회보험들은 향후 국민부담이나 국가채무를 대폭 오르게 하는 재정정책의 큰 제약요건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민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재정 여력과 미래에 크게 증가할 잠재적 국민부담을 최대한 조화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첫 단추가 지난해 공무원 연금개혁 노력에서 표출됐듯이 사회보험의 구조를 좀 더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올해의 예산안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무난함’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사회보험의 구조개혁을 바탕으로 경제상황에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이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