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찾은 식당이나 공원, 공연장, 박물관 같은 곳에 들어서면 아들은 요즘 부쩍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는 말이나 표현을 맥락 없이 툭툭 뱉는 또래 아이들의 특성상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다가도, 실제로 과거에 한 번 왔던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적잖이 놀란다. ‘아니, 하루 이틀 지난 것도 아니고 1년도 훨씬 더 된 일을 어떻게 들춰내지?’ 이 놀라움은 자연스럽게 흐뭇함으로 이어진다. ‘그래, 이 아빠가 너 어릴 때 밖으로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구나.’ 사실 고마운 일이다.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데리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아빠조차 가물가물한 육아휴직 당시의 일을 기억해 줄 때는 감격스럽다. 또 아내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라면 그 의미는 배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아들이 이런 좋은 기억만 끄집어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들의 기억력은 말이 느는 것에 비례해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점점 화려해지는 말발에 더해 날카로워지는 아들의 기억력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맞벌이라 반찬가게 신세를 질 때가 많은데 최근 온 식구가 단골 반찬가게에 들렀다가 이 아빠는 봉변을 당했다.
“엄마, 나 이거 먹어 봤어.”-“뭐? 이 단호박찜?”-“응.”(모자 간의 대화가 사실 여기서 멈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해 준 적 없는데, 어디서 먹었지?”-“어린이집에서.”-“언제?”-“음, 아빠가 나 안 데리러 와서, 음, 울고 있는데, 음, 선생님이 주셨어!”
그날은 아내가 일이 많았던 데다 회식까지 예고돼 있던 날이라 이 아빠가 하루 대휴를 낸 날이었다. 평소 못한 운동을 몰아서 하느라 피곤했던지 그만 낮잠이 들었는데 아들 하원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아들의 ‘고자질’로 아내로부터 어찌나 타박을 들었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유모차만 조용히 밀었던 기억이 선하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와서 데려가는데 아들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그 와중에 먹은 단호박찜을 보니 그 생각도 났던 모양이다.
어디 이뿐인가. 아들이 15개월 정도 됐을 때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있었던 일도 아들은 불쑥 끄집어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자고 있는 아들을 홀로 두고(어느 나라에서 이랬으면 경찰이 잡아간다고 한다.) 잠시 1층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다시 올라왔는데 집이 아수라장이 돼 있었던 적이 있다. 엄마 아빠를 얼마나 찾았던지 집 안의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그래도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자 찾아 나설 요량으로 제 신발을 든 채 울면서 집 안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은 이 아빠에게도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곧장 아내와 공유를 한 것이지만, 아들은 잊힐 만하면 그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 집에 아무도 없어서 울었잖아.” 아들의 기억력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이 아빠의 ‘전과’도 하나씩 추가되는 느낌이다.
이 정도 되면 아이들의 기억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하지 못해서 표출이 안 되는 것일 뿐, 기억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말과 행동에 더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나저나 배가 고파 새벽 3시에 일어난 녀석에게 압력솥으로 윤기 좔좔 흐르는 밥을 해서 먹이던 일, 다 자는 밤에 깬 뒤 도무지 다시 잠들지 않는 녀석을 안고 동네 골목을 새벽까지 누비던 일…,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아들이 언제 이야기하게 될까. 물론 기억해 주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