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자살 문제는 개인적 차원의 불행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북유럽의 높은 자살률이 신문과 방송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자살률이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예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하게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나라가 되면서 자살률 증가에 대한 사회·경제적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8.1명으로 OECD 평균인 12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2위인 헝가리의 19.4명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1985년 10.2명에 불과했던 자살 건수가 30년 동안 3배나 증가한 것을 그저 개인적 차원의 불행으로 치부할 수는 없으며, 특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증가 속도를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에게 있어 자살이 생존본능을 거스를 만큼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일부 구성원에게는 그렇게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는 사회가 돼 버린 것은 아닐까?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던 시기에 자살률도 증가
그럼 이렇게 자살률이 빠르게 증가한 그 30여년 동안 우리나라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림>을 보면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 국면이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살률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8.4명 수준으로 하락하기도 했었다. 특이한 점은 1997년 15.6명에서 1998년 21.7명으로 1년 사이에 급증한 것과 2000년 16.6명에서 2005년 29.9명으로 급증한 것이다.
1998년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실직, 파산 등과 같은 극단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던 시기로 기억된다. 2000년대 초중반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카드대란과 본격적인 양극화 심화, 그리고 이전 시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경제성장률을 처음으로 경험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자살률 증가 추이는 자살률 증가가 한 나라의 거시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을 갖게 한다. 자살은 그동안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연구 영역이었지만 경제적 배경이 사회적 차원의 자살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자살률을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자살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피에라드(Pierard)와 그루텐도르스트(Grootendorst)는 2014년 Applied Economics에 게재된 「경기불황이 절망을 야기하는가? 캐나다의 경제적 상황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Do downturns cause desperation? The effect of economic conditions on suicide rates in Canada)」이라는 논문에서 경제변수가 캐나다의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을 시도했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간 동안 캐나다 10개 지역으로 구성된 패널자료를 분석한 저자들은 같은 기간 동안 캐나다에 현저한 경기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분석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살률에 대해선 전체인구의 자살률이 아닌 노동가능 연령의 자살률을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거시경제적 충격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샘플을 채택한 것이다.
또한 거시경제 환경 변화가 자살에 미치는 장기적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현재의 거시경제 변수 외에 시차변수도 설명변수로 고려했다. 피에라드와 그루텐도르스트는 패널자료 분석을 통해 경기위축이 캐나다 남성 노동가능 인구의 자살률을 상승시킨다는 일관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즉 1인당 GDP 1% 감소와 남성 실업률 1% 증가가 동시에 야기될 때, 10만명당 자살률은 연간 38~52명 증가한다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이 논문이 제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결과는 1인당 정신과 의사의 수가 자살률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거시경제 상황 개선과 함께 충분한 정신과 의료의 제공이 노동시장에 있는 남성의 자살률 감소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절망에 빠진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비슷한 방식으로 리브스(Reeves) 등은 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2014년 게재한 논문 「대침체기에 있어서의 경제적 충격, 회복력, 그리고 남성 자살: 20개 EU 국가들의 횡단면 분석(Economic shocks, resilience, and male suicides in the Great Recession: crossnational analysis of 20 EU countries)」에서 1981~2011년 사이의 EU 20개국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의 경기침체가 유럽의 자살률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실업률 1%p와 부채의 1% 증가는 각각 남성 자살률을 0.94%p, 0.54%p 증가시키는 반면,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unaffordable housing)는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rogrammes)에 대한 지출과 사회자본 수준 증가는 실업으로 인한 자살 증가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었으나 항우울제 처방 규모, 실업수당, 1인당 사회보장 지출 등은 유의한 효과가 없었다. 여기서 소개한 두 논문 모두 경제적 여건 악화가 한 사회의 남성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지만 여성 자살과 경제적 여건의 관계에 대해서는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피에라드와 그루텐도르스트의 논문에서 여성의 경우엔 GDP나 실업률과 같은 변수들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이 남성에 비해 유의성이 떨어지거나 유의하지 않았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비율이 낮기 때문이거나 아직까지 가계 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상대적 경제 비중이 낮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림>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보면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보다 높고 외환위기 때의 자살률 증가 속도 역시 남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역시 거시경제 상황이 남성 자살률에 더 유의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 자살률이 남성 자살률보다 낮기는 하지만 여성 자살률 역시 OECD 1위인 16.8명으로 2위인 일본의 10.6명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향후 여성 자살률의 원인에 대한 사회·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대응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언론에 자살에 대한 뉴스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어느덧 이 끔찍한 뉴스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은 상황에서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해 그 대처 방안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으로 나타난 자살률을 줄인다고 하기보다는 자살할 만큼 절망에 빠진 우리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고 그런 배려가 있는 사회가 더욱 성숙한 사회라고 믿는다.
* 참고문헌
- Pierard, E., Grootendorst, P. , “Do downturns cause desperation? The effect of economic conditions on suicide rates in Canada,”Applied Economics , 46(10), 2014, pp.1081~1092
- Reeves A., McKee M., Gunnell D., Chang S-S.,Basu S., Barr B., Stuckler D.,“Economic shocks, resilience, and male suicides in the Great Recession: cross-national analysis of 20 EU countries,”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 , Vol. 25(3), 2014, pp.404~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