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약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퇴근길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남의 자동차 주차 ‘상태’를 확인해 주차 구역 밖에 차를 세운 운전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아내까지 나서서 ‘참 할 일도 없다.’며 타박하는 통에 썩 유쾌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의욕이 솟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도 유난스러운 데가 없진 않아 스스로도 고약한 버릇이라고 여기고 있다.
메시지 내용은 길지 않다. “주차 구역이 아닌 곳에 차를 세우셨습니다.” 혹은 “소방전용 구역에 주차를 하셨습니다.” 그 운전자도 모를리 없는 내용을 언급, 상기시켜 주는 수준이다. 말미에는 이름 대신 '000동 주민'이라고 남긴다. 이쪽 전화번호까지 전송이 될 터이니 이 정도면 나름 예를 갖췄다고 보는데, 그래도 아내는 ‘그들의 보복’ 운운하며 이 아빠를 말린다. 그렇지만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면 대개 아내의 경고는 무시된다.
경비실을 먼저 접촉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주차질서 확립’ 메모지 하나 딸랑 앞 유리창에 올라갈 뿐,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신들의 월급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들’을 향해 이 아빠처럼 간 큰 행동을 할 수 있는 경비원은 없으리라 생각한 것도 사실 직접 나서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
제대로 된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을 낸 곳은 이 아빠뿐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주차금지’라고 적힌 플라스틱 스탠드가 중간에 세워지기도 했고, 좀 지켜지는가 싶더니 또 그걸 한쪽으로 치우고 주차하는 사람들까지 생기자 콘크리트와 철제로 된 제법 무거운 불법주차 ‘방해’ 물건이 세워지기도 했으니까. 뒤에 세워진 것은 어른이 지나가다 걸려도 다치기 십상인 물건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이지만 넓은 지하주차장을 갖춘 덕에 각 가구당 주차가능 대수는 약 1.3대에 이른다.
‘지하’ 주차장이긴 하지만 밝고 환한 데다 눈 내린 추운 날이 아니면 빈자리를 찾는 데 결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이렇게 넉넉한 주차장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어차피 아침 출근시간이면 빠질 텐데 좀 더 걸어야 하는 지하주차장보다는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어린아이가 카시트에 곤히 자고 있다든가,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야 했다면 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집 가까이 차를 세우고 싶은 마음은 이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가 법 적용을 받지 않는 도로고 주차장도 단속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공공의 질서나 안녕에 관계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세상 모든 재앙들이 이렇게 사소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틈을 노리고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름도 모르는 같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지금까지 이 아빠가 보낸 문자 메시지는 30통가량. 하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답을 받은 적은 없다. 경비원도 가만있는데 같은 아파트 주민이 그랬으니 기분 나빠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얌체 같은 행동에 스스로 부끄러워 대꾸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자 메시지를 받은 자동차들을 다시는 그곳에서 볼 수 없어 당분간 이 ‘수고’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걸 직업병이라고 하면 서운할 수도 있다. 아빠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