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열매를 감추고 있는 식물들은 수확 때 아이들을 열광하게 한다. 감자, 고구마, 땅콩을 캘 때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한다. 일부가 밖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당근이나 무를 뽑은 아이들은 무슨 보물을 발견하기나 한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호기심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10월 15일 공동밭에 심은 고구마를 캤다. 함께 농사를 짓는 이들 대부분은 온가족이 함께 밭에 나왔다. 고구마는 심은 지 150일을 전후해 수확하는데, 서리 피해만 없다면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우리 밭에선 5월 14일에 1차로 모종을 사다 심고, 밭에서 직접 기른 호박고구마 모종을 5월 말에 심어 고구마밭을 좀 더 넓혔다. 대략 다섯 달 만에 수확한 셈이다.
먼저 고구마 순을 걷어내고 삽과 쇠스랑을 이용해 이랑을 부쉈다. 그러면 아이들이 달려들어 호미로 고구마를 캐낸다. 껍질이 붉고 길쭉한 고구마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연분홍의 고구마가 나왔다. 15m 길이의 이랑 6개를 만들어 심었는데, 7가족이 거의 한 상자씩 나눌 수 있었다. 감자가 벌레에 시달려 수확이 변변치 않았던 것을 돌아보며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모종을 얻으려고 심었던 씨고구마를 캐내자 다들 탄성을 내질렀다. 애초 묻은 고구마의 서너 배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속은 비고, 모양은 울퉁불퉁했지만 씨고구마가 그렇게 커질 것이라곤 다들 생각지 못했던 까닭이다. 씨고구마에서 자라난 줄기에도 햇고구마가 몇 개씩 달려 있었다. 몇몇은 그걸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구마는 이랑에 모종을 심을 때 비스듬히 뉘어서 심어야 한다. 덩이뿌리가 세로로 맺히는데 너무 깊은 곳에 달리면 캐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밭에서도 덩이뿌리가 아주 깊은 곳에 달려 문화재 발굴하듯 캐낸 것도 일부 있다. 고구마는 자라는 동안 우리에게 많은 순을 제공했다. 마지막 수확을 할 때도 여럿이 모여 순을 적잖이 따서 껍질을 벗겨뒀다. 데쳐서 말렸다가 육개장을 끓일 때 넣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고구마는 손이 덜 가는 작물이다. 이랑을 만들고 모종을 심는 것은 다른 작물과 비슷하게 손이 간다. 하지만 생육 초기에 김매기를 1~2번만 하면 더는 김매기를 하 지 않아도 된다. 고구마 수확에 다들 마음이 넉넉해졌다. 자연 공부를 하는 마을 아이들이 우리 밭에서 수확 체험을 할 수 있게 고구마 일부를 캐지 않고 남겨뒀다. 한 회원은 자기 밭에 심은 토란을 한 그루 내놓았고 다른 회원은 잘 키운 야콘 한 그루를 내놓았다. 야콘은 ‘땅 속의 배(梨)’라고 불리는 남미 원산의 식물이다. 다른 회원은 당근을 몇 개 캘 수 있게 허락했다. 우리가 공동으로 짓는 밭에서 무를 캐는 것도 허락하기로 했다.
그날은 잔칫날이었다. 한편에 불을 피워 숯을 만들고 고구마를 구웠다. 원두막 옆에서 고기를 구워 밭에서 딴 쌈채소에 싸 먹고 막걸리와 맥주를 마셨다. 수많은 지렁이들이 싸놓은 똥과 그 덕에 부드러워진 밭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잘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와 하얗게 솜을 드러낸 목화를 두고 이야기했다. 그날은 농장이 ‘술밭’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