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10년 동안 부부싸움이란 걸 해본 기억이 없다. 싸움이란 대등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잘못은 늘 나의 몫이니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혼날 뿐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혼나고, 술 마시다 약속한 귀가시간을 지키지 못해 혼나고, 술 마시고 들어와 나눈 이야기를 다음 날 아침 하나도 기억 못해 혼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약속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고주망태가 돼 혼나고.
밖에서 일하다 보면 좋든 싫든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너만 밖에서 일하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기자는 술자리에서도 취재한다? “술 마시고 한 이야기 기억도 못하면서”라는 지적이 돌아올 것이다. 초년 기자 시절 모 선배는 내게 취재원과 술을 마실 땐 틈틈이 화장실에 가서 메모를 해야 한다고 매우 진지하게 조언하기도 했지만, 십수 년 기자 생활 동안 술 마시다 취재수첩에 받아 적을 만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다. 결국 그저 술이 좋아서 마신 거란 얘기고,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단 얘기다. 일방적으로 혼나도 싸다.
전세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딸 쌍둥이를 얻으면서였다. 쌍둥이 백일 즈음에 나는 10년 근속 대가로 얻은 한 달간의 안식휴가를 과감히 써버렸다. 남들은 보통 장기 해외여행에 쓰는 휴가를 나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쌍둥이를 보는 데 썼다. 각각 3시간 주기로 먹고 자기를 반복하는 아기들과 함께한 그 한 달은 ‘내 인생 최고의 고생’ 랭킹에서 수습기자 시절을 가뿐히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도 나는 가급적 저녁 약속을 만들지 않고 일찍 퇴근해 아이들 목욕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집안의 가장 핵심사업인 육아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지자 간이 커졌다. 만성적인 수면부족(남자는 잠결에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일찍이 거짓으로 판명됐다.)은 쉽게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아내를 상대로도 짜증을 표출할 수 있게 됐다. 음주로 인한 수면부족 상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지난해 9월, 아내가 복직하고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나는 ‘갑’이 됐다. 아내는 ‘미안한데’가 입버릇이 됐다. “미안한데 일이 좀 많아서 퇴근이 좀 늦을 것 같아, 미안한데 회의가 길어지네, 미안한데 갑자기 팀 회식이 생겼어….”내가 보기엔 아내도 최대한 일찍 집에 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도 아내는 늘 미안하단다.
미안한 마음으로 퇴근한 아내는 하루 종일 쌍둥이와 씨름한 나를 극진히 대접했다. 쌍둥이가 잠든 뒤 집 앞 고깃집에서 한우 꽃등심을 사줬다. 슬그머니 소주 한 병 주문해도 싫은 내색도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날이 추워지니 생선회가 생각나네” 했더니 며칠 뒤 백화점 마감세일에서 회 한 접시를 사다줬다. 어느 날은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며 처음 보는 수입 크래프트맥주 몇 병을 들고 오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노래한 시인 천상병과 어깨를 겨룰 지경이다.
하지만 권력은 무상한 것이라고 역사는 늘 말해 왔다. 특히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권력의 무상함을 어느 때보다도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나도 처음으로 누려 보는 권력에 마냥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계속 이러다간 가계가 거덜 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진작 꽃등심 외식은 삼가기로 했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난 어떻게 될까. 다시 일방적으로 혼나는 무책임한 존재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주양육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미 너무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내와 대등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조화롭게 육아를 분담하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