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새해 소망의 공통점이 있다면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행복을 얻는 방법, 현재와 미래 중 더 중시하는 것, 타인과의 연결성에 대한 인식 등에 따라 행복관에 차이는 있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고 싶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정도로 보편적이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인적자본론’ 칼럼의 첫 주제를 ‘행복’으로 잡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 6~7년 전에 국무총리실로부터 미래인재상에 대한 발표를 요청받았을 때 떠올린 키워드도 ‘행복’이었다. 개인과 사회의 행복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인재의 노력이 자신은 물론 나라의 행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창의, 인성(inter-personal skill) 외에 긍정(intra-personal skill)을 추가한 미래인재의 조건도 행복을 염두에 둔 문제의식에서 제시했고, 공감을 받았다.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교육혁신의 임상을 위해 GIST대(광주과학기술원 학사과정)에 와서도 경제학 관련 과목 외에 ‘행복의 조건’이라는 수업을 열었다. 일방적 강의보다 자아 성찰과 조별 토론을 통한 배움의 공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30명으로 수강정원을 제한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들 중 거의 정원만큼의 학생이 수강기회를 간곡히 청원하는 메일을 보내와 행복 수업에 대한 초과수요를 실감했다. 첫 시간에 수강생들이 스스로 평가한 행복감(10점 척도)은 지인들의 평가(수업 중 보낸 문자에 대한 응답)와 상당히 유사했다. 행복감 같은 주관적 웰빙의 측정가능성과 타당성 및 유용성에 관한 연구들은 객관적 정밀측정의 세계에 사는 이공학도들에게도 점차 수용됐다. 학생들이 각자의 ‘인생행복곡선’을 1년 단위로 그려온 후에 조별로 토론할 때 필자는 흥분됐다. 그들은 사진을 찍는 것도 의식하지 않고 서로 털어놓는 인생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에는 아픈 가정사와 바닥의 경험까지 들어 있었다.
강의 못지않은 비중으로 조별 토론을 하고, 토론을 통해 도출한 행복에 관한 배움을 조별 칠판에 정리한 후 전체 학생들과 공유하는 수업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5명의 조원들 간에 형성된 신뢰였다. 언론기사에서도 다뤄진 바 있듯이, 대학수업에서 조별 과제는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싫어한다. 조별 발표를 시키는 교수의 동기에 대한 의심도 있지만, 조원들 간에 공정한 역할 분배가 되지 않는다는 무임승차자 문제가 주된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는 지난 30여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됐는데 세계 가치관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1980년대 초반에 38%였으나 2010년대 초반에는 27%로 하락했다. 같은 조사에서 독일 사회의 타인 신뢰는 같은 기간 중 31%에서 45%로 상승했고,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60~70%대다.
행복 수업 수강생 30명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마지막 두 문항은 신뢰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조별 활동을 할 때, 어떤 학생이 참석하지 못한 회의 자리에서 다른 조원들에 의해 역할이 분배돼도 그 학생에게 공정한 몫이 맡겨질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30%만이 긍정적으로 응답을 했고 47%는 부정적이었다(나머지는 중립적 응답). 그러나 “이번 학기 ‘행복의 조건’ 수업에서 내가 속한 조의 조별 활동을 할 때, 내가 참석하지 못한 회의 자리에서 다른 조원들에 의해 역할이 분배돼도 나에게 공정한 몫이 맡겨질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선 긍정 응답비율이 67%였고 부정 응답비율은 16%에 그쳤다. 지난 9월 20일 실시한 비교적 학기 초의 조사임에도 인생행복곡선 토론 등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며 함께 배움을 정리하고 발표했던 경험을 가진 학생들에게 상호 신뢰가 상당히 형성됐던 것이다. 경제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자본의 요체인 신뢰가 한국 사회에서 추락해온 것도 경쟁 강화, 분배 악화 속에 배려가 실종되고 바로 옆집 이웃 간에도 소통이 사라진 현실과 토론을 통해 공감하고 합의해본 경험의 부재 등에 기인할 것이다.
학생들은 더 행복해졌을까? 학생들이 마지막 수업 때 제출하며 일부 구절을 낭독하기도 했던 기말 에세이의 몇 조각을 그대로 옮겨 보자.
“제가 되고 싶었던 ‘빛나는 사람’이란 ‘스스로의 빛’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주는 빛’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남을 의식하는 삶 속에서 피로를 동반하며 살아왔습니다. 강한 자극은 저의 머릿속을 그런 압박에서 해방시켜 줬기 때문에 늘 제가 가까이하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 가지게 되기 전에야 그것을 갖는 상상은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만, 이미 가지게 된다면 다음엔 무엇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계속 위로, 위로 도달하려고 하다 보면 그것이 대체, 제가 가지게 되는 것들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그저 인생에 스쳐 지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정거장, 그저 숫자만 바뀌는 의미 없는 통장 잔고 따위에 불과한 것이겠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더 이상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나를 찾고 싶다. 바깥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지 않고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켜 행복을 찾고 싶다. 느리더라도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이제 나는 다시 행복해질 것이다.”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어떻게 관점을 넓힐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관점을 좁게 만든다. … 긍정적인 생각은 넓은 관점을 가지는 것과 양성 피드백의 관계이며 상향곡선을 이룬다.”
“그렇게 타인을 혼자 평가하고 미워하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었다. 내가 남을 미워하니까 남도 나를 미워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남이 나를 미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못난 존재인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답을 찾고 싶었다. 답은 간단했다. … 굳이 전 인류적인 사랑이라는 거창한 근거가 아니라, 그저 내 기분에 대한 이해관계라는 근거로도 충분히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 강의에서 수강생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타인과 나는, 그렇게 다른 존재가 아님을 다시 알게 됐으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같은 ‘인간’임을 알았다.”
인간심리의 긍정적 측면과 행복을 다루는 긍정심리학의 실증 연구를 종합하면 개인 행복의 50%는 유전적 설정(일종의 진폭의 중심), 40%는 의도적 행동과 수련, 10%는 환경과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학생들은 행복의 10%를 위한 경제적 성장과 분배, 환경의 중요성 등을 간과하지 않았고, 그런 공부와 토론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긍정적 마인드가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론자, 냉소주의자가 아닌 개혁가를 만든다. 행복 수업은 곳곳에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