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보호주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1세기 세계 통상규범을 미국이 주도하겠다고 일본 등 11개국과 함께 타결시켰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미국은 탈퇴했고, 발효한 지 20년이 넘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려고 시동을 걸었다.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미국 기업에는 불이익을 주겠다”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 말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의 으름장에 많은 기업들이 해외이전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트윗에 따라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은 기업들에는 지난해 이맘때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불확실성이다.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그의 취임식 연설은 미국 최우선주의의 새로운 구호가 될 참이다. 트럼프는 무역을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기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미국은 이 경기에서 져왔다고 주장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증대하는 것은 미국이 지고 있는 것이고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미국이 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법에 따르면 무역수지 적자는 줄여야 하고 사라진 일자리는 복원시켜야 ‘미국은 다시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법은 반지성적, 반역사적이다.
한 국가의 무역수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대국의 무역장벽보다는 그 국가의 소비성향과 저축성향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불공정무역국가로 지정하고 통상보복으로 위협했고, 화들짝 놀란 일본은 자발적 수출규제와 미국 내 더 많은 투자를 약속하면서 일본시장을 더 개방했다. 하지만 지난 30년의 경제통계는 미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지고 있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경제의 활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출보다 더 많은 수입을 누리기 위해선 외국인들이 그 차이만큼 미국으로 투자해야 가능하다. 기술, 브랜드, 고급인력, 시장 등 그 어떤 것이 됐든 미국경제의 매력 때문에 외국인투자가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트럼프가 경쟁상대였던 힐러리를 이길 수 있게 만든 미국 중서부 지역 백인노동자들의 몰표를 의식한 일자리 복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5년간 미국에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의 80% 이상은 기술 요인에 기인한다고 분석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일하는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주범은 멕시코 노동자나 중국 노동자가 아닌 로봇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21세기 들어와 500만명 정도 감소했지만 미 제조업은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트럼프의 일방통행 보호주의 공세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요란함 때문에 여론의 호들갑스런 시선을 끌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만 기대서는 한국경제가 트럼프발 보호주의 공세를 헤쳐나가기엔 역부족이다.
외국시장에 한국 제품을 수출하는 ‘밀어내기’ 주도형 무역패러다임은 외부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늘 제기돼왔다. 그 내수를 5천만 대한민국 소비자로 국한해왔기 때문에 그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내수시장을 한국에서 비행기 2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확대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과 중국의 소비자를 끌어들여 그들의 경제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면 한국경제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트럼프발 보호주의 강풍이 ‘밀어내기’ 주도에서 ‘끌어들이기’라는 새로운 축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전환을 가져오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의 미래는 더 답답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