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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보다 아빠천군만마
유신재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2017년 04월호



쌍둥이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장모는 걱정이 평균보다 약간 많으신 편이다. 지난 연말 쌍둥이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내 회사 어린이집에 당첨돼 우리 부부가 환호할 때에도 장모는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손녀들을 어린이집에 맡긴다는 걸 반기지 않으셨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아내 회사 근처로 이사까지 한 뒤에도 장모는 어린이집 등원만 손꼽아 기다려온 사위 속이 뒤집어지는 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몇 달이라도 늦게 보낼 수는 없는가” 하셨다. “그럼 엄마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애들 봐줄 거냐”는 아내의 타박을 몇 차례나 들으셨다.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아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보호자가 함께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조금씩 떨어져 있는 시간을 늘려가기 시작한다. 2015년에 태어난 아이들 10명이 모인 ‘새싹반’에 할머니와 함께 오는 아이들이 셋 있다. 엄마와 오는 아이들이 넷이고, ‘이모님(육아도우미)’과 오는 아이도 하나 있다. 아빠와 오는 애들은 물론 우리 쌍둥이들뿐이다.


그중 한 할머니와 매일 아침 짤막한 대화를 나눌 만큼 친해졌는데, 그분은 딸이 6개월 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이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딸네서 묵으며 손녀를 봐주고 주말에만 집에서 지내신다고 했다. “나도 그렇지만 졸지에 주말부부가 된 남편은 무슨 죄냐”고 하신다. 점심밥까지만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손녀가 3주 만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기에 성공한 날 그 할머니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축하드려요!” 인사가 절로 나왔다.


우리 장모나 그 할머니나 손녀 아끼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텐데, 주양육자냐 아니냐에 따라 어린이집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 장모도 어린이집의 그 할머니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쌍둥이들은 어린이집 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나와 헤어질 때 우는 날보다 손 흔들어주는 날이 더 많다. 집에서 아빠가 차려주는 밥도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우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의 훨씬 다채로운 반찬을 몇 번씩 리필해 먹고 있다. 낮잠도 두 시간씩 푹 잔단다. “어린이집 재밌어? 내일 또 갈까?” 물으면 둘 다 “응” 힘주어 대답한다.


덕분에 나는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자유시간이 생겼다. 그래 봐야 집에 돌아와서 아침 먹은 것 치우고 청소하고 점심 챙겨 먹고 빨래 돌리고 나면 금세 애들 데리러 갈 시간이 돌아온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 살림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걱정스러운 눈치지만, 아이들 방해받지 않고 청소기를 돌리고, 낮잠 자는 애들 깨울 걱정 없이 덜그럭거리며 설거지를 하니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최종 목표인 6시까지 어린이집에 머물 수 있게 되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다. 집안일을 대강 마치고 벽시계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집에서 홀로 커피 한잔 내려 마시면서 평생 처음으로 ‘집이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 낮이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이구나’ 깨닫는다.


이게 지속 가능한 육아구나. 혼자 쌍둥이들과 씨름하며 얻은 스트레스와 짜증이 사라졌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놀아줄 수 있게 됐다. 울음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해도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은 필요한 법인가 보다.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잘 다니다가도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들이 많단다. 새싹반에는 아직 엄마와 떨어지지 못해 점심도 못 먹고 집에 가는 아이도 있다. 개원하자마자 아파 며칠 나오지 못한 아이도 있다. 새싹반 아이들 10명 모두 무사히 적응하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10명의 아이들과 그 부모, 할머니들의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 세 분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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